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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의 시대사색]AI 강국은 독서국가와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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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2-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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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지식 생산과 소비를 돕는 강력한 비서가 되었고,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정보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한때 오랜 독서와 사유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었던 지식의 산맥들이, 이제는 손바닥 위의 작은 화면 속에서 순식간에 펼쳐진다. 이것은 분명 축복이다. 그러나 동시에 조용하고도 깊은 위기이기도 하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이 위기의 징후를 보여준다. 학생들은 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문장의 의미를 따라가지 못한 채 멈춘다. 성인들도 요약된 정보에는 익숙하지만, 맥락을 따라가는 독서에는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생성형 AI는 지식 접근의 장벽을 낮추었지만, 그 대가로 인간 내면에서 이루어지던 사유의 긴 여정을 대신 수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생각하는 시간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AI 시대의 그늘: 사고의 외주화
이것은 ‘사고의 외주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 질문하고 탐색하며 사유하던 내면의 지적 근육이 점차 인공지능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는 현상이다. 문제는 단지 지식을 쉽게 얻는 데 있지 않다. 그 지식이 ‘나의 것’이 되는 과정이 생략된다는 데 있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정신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자신의 세계로 돌아와 그것을 재구성하는 창조의 과정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한 인간의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이자, 자신의 정신을 확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AI가 요약해준 지식 속에서는 이 여정이 사라진다. 출발도, 방황도 없이 곧바로 도착지만 남는다. 나는 이 점에서 우리가 ‘다시 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업화 시대의 이상적인 시민상은 ‘부자시민’이었다. 가난을 극복하고 잘사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시민들은 묵묵히 일했고, 그 노동 속에서 산업화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1970년대 말과 1980년대를 지나면서 시민들의 의식은 변화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밥만 먹고 사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했다. 이 시기의 이상적인 시민상은 ‘민주시민’이었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시민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며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갔다.
이제 우리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다. 나는 지금, 새로운 시민상을 꿈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독서 교양시민’이다.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문화강국의 시민, 책을 통해 자신을 확장하고 사유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는 시민이다.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외출하는 시민, 책을 통해 생각을 나누는 공동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다음 단계의 시민상이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3대 AI 강국을 목표로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과거 발전국가가 산업화를 추진했던 것처럼, 이제는 AI 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필요한 일이다. AI 기술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강국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문학적 창의성과 상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AI는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 독서는 바로 그 창의성을 길러내는 토양이다. 나는 이 점에서 AI 강국과 독서국가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최근 독서국가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가 나섰다. 김영호 위원장의 리더십하에 황석영, 허영만, 유홍준, 유홍림, 유시춘, 박준 등 많은 이들이 독서문화 확산을 위해 뜻을 모으고 있다. 나도 참여하고 있다. 이는 보수와 진보, 여야를 넘어, 우리 공동체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이제 우리는 독서국가를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야 한다. 나는 독서 가정, 독서친화도시, 독서 중점학교가 연결되는 독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서’ 가정·친화도시·중점 학교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책과 가까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자유학기제를 ‘독서 자유학기제’로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독서 친화적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아동친화도시’ ‘평생학습도시’처럼, 도시 전체가 독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모델이다. 작은 서점이 지역 공동체의 문화 허브가 되고, 마을 도서관이 시민들의 사유 공간이 되며, 거리 곳곳에서 책을 만날 수 있는 도시. 그런 도시를 꿈꾸어보자. 도시에 존재하는 작은 서점들이 독서 커뮤니티의 허브로 기능하도록, ‘북카페형 공간’으로 재구조화되도록 지자체가 재정 지원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인천교육청의 ‘읽걷쓰’(읽기·걷기·쓰기), 서울교육청의 ‘북웨이브’, 서울시의 ‘야외도서관’과 같은 정책들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특히 ‘독서 가정’이 독서국가의 토대라고 생각한다. 학부모가 책을 읽고 아이와 함께 나누는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독서문화가 확산되는 사회 말이다. 나는 학부모가 가정에서의 ‘독서 리더’가 되고, 나아가 마을공동체의 독서문화를 진작하고 이끄는 독서 리더로서 역할을 하는 소망도 가져본다.
요즘 ‘반려도서(companion book)’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 반려동물처럼 우리 삶 곁에 늘 함께하는 책이다. 삶의 어느 순간 우리를 위로하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모든 시민이 한 권 이상의 반려도서를 갖는 나라, 그것이 진정한 독서국가일 것이다.
AI 시대는 인간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기계가 점점 더 많은 것을 대신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계의 인간화’라 표현할 수 있는 AI 시대에, 우리는 암기 중심 교육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기계화를 촉진하는 일이다. 이제 전환해야 한다.
나는 그 답이 독서 속에 있다고 믿는다. AI 강국은 독서국가 위에서만 완성될 수 있다. 기술은 국가를 강하게 만들지만, 독서는 인간을 깊게 만든다.
그리고 깊은 인간만이, 위대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지배주주가 동일한 여러 기업에서 동시에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하면 통합·일괄 심사를 통해 퇴출 여부를 신속하게 정하기로 했다. 코스닥 저평가 요인으로 꼽힌 ‘좀비기업’을 빠르게 퇴출해 코스닥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한국거래소가 19일 실질심사 조직 확대·실질심사 절차 개선 등을 골자로 한 코스닥시장 실질심사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동전주 퇴출 등 코스닥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하자 거래소도 이에 발맞춘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거래소는 “코스닥 시장은 부실기업 퇴출에 노력한 결과, 지난해 실질심사로 상장폐지 기업이 23개사로 2010년 이후 가장 많았고, 상장폐지 소요기간은 평균 384일로 크게 단축했으나, 투자자 신뢰 회복을 위해선 장기간 누적된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기업 부실과 관련된 실질심사 대상을 확대한다. 앞으로는 6개월 새 자본전액잠식(자본총계가 마이너스) 상태에 빠지면 상폐 실질 심사 대상으로 지정된다. 그동안 연간 단위로 들여다봤으나 이를 6개월 단위로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상장사가 중대하거나 고의적인 불성실공시 위반을 할 경우에도 실질심사 대상으로 지정되도록 한다. 상장폐지실질심사 대상 기업 중 지배주주가 동일한 기업이면 통합심사를 시행한다.
또한 실질심사 중 부여되는 개선기간도 단축한다. 현재 개선기간은 최대 1년6개월까지 부여될 수 있지만, 앞으로는 1년으로 단축된다. 시장 잔류기간을 단순히 연장하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코스닥시장은 개선기간 중인 실질심사 기업에 대해서도 이행 점검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중간점검을 강화해 개선계획을 이행하지 않거나 계속기업으로의 존속 능력이 상실됐다고 판단되면 개선기간 전 퇴출 여부를 조기 결정한다.
코스닥시장은 이를 위해 상폐 담당 부서에 기획심사팀을 신설하기로 했다. 특히 부실기업 퇴출을 위해 이달부터 내년 6월까지를 집중 관리 기간으로 지정, 코스닥시장 본부 내 ‘상장폐지 집중관리단’을 신설·운영해 상폐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거래소는 “코스닥시장은 부실기업을 선별하고 상장 적격성 회복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계기업의 신속한 퇴출에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년째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 질서를 흔들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양한 질문들을 낳았다.
올해 들어 무게감 있는 러시아 관련 책 4권이 잇따라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다. 세르히 플로히 <로스트 킹덤>(글항아리), 찰스 킹 <흑해>(사계절), 크리스 밀러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너머북스), 에마뉘엘 토드 <서방의 패배>(아카넷)는 러시아의 정체성부터 경계까지 서로 다른 관점에서 포착한다. ‘러시아 민족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출발해, 그 ‘신화’가 부딪혀온 지정학적 무대를 살펴보고,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반복해온 실패를 따라간 뒤, 러·우 전쟁이 드러낸 ‘서방’의 취약성에 대한 진단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이들 책을 읽는 것은 오늘날 세계 질서의 균열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된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영향력 있는 동유럽사 연구자인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대 교수는 2016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 광장에서 상징적인 장면을 목격한다. 이웃 나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대공이자 키이우 루시의 군주였던 볼로디미르(958~1015)를 기리는 동상이 러시아 수도 한복판의 중요한 장소에 세워진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동상 제막식 연설에서 그를 러시아 영토를 넓히고 중앙집권 국가의 토대를 마련한 정치인으로 호명하며 “여러 민족, 언어, 문화, 종교로 이루어진 연합”을 이룩했다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장면에서 키이우 루시라는 ‘잃어버린 왕국’ 신화를 되찾으려다가 근대 국가로 거듭나는 길을 상실하고 또 하나의 ‘로스트 킹덤’이 된 러시아의 모습을 읽어낸다. 책은 러시아 제국이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벨라루스인을 아우르는 독특한 ‘민족 정체성 모델’을 만들어냈고,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교차해왔다는 점을 정교하게 풀어낸다. 긴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러시아 민족’이라는 서사가 단선적이진 않았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제국의 기억과 민족의 경계가 충돌해왔음을 드러낸다.
러시아 문제의 핵심은 결국 어디까지 러시아 민족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는 제국의 유산을 되살려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구축하려 했고,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선 양쪽에서 저마다의 인종적, 민족성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범러시아 민족이라는 개념이 하나의 안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의되어야 했던 불안정한 구성물이라는 점이다. 그 허망함을 저자는 절제되고 균형잡힌 논조로 전한다.
유라시아 지역 연구 권위자인 찰스 킹 조지타운대 교수는 2700년에 이르는 흑해 세계의 장대한 역사를 한 권에 집약했다. 흑해는 유럽과 아시아,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이슬람 세계를 가르는 ‘경계’인 동시에, 각 세계의 ‘변방’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흑해는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는 흑해의 탄생부터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 창세기에 얽힌 ‘대홍수’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 영웅들의 모험, 오스만제국·러시아제국·소련으로 이어지는 열강들의 각축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흑해 세계의 ‘전체사’를 써냈다. 책은 ‘민족’과 ‘국가’를 중심에 둔 종래의 역사 서술을 배격하면서, 이 지역에 등장했던 다양한 집단·종족, 문화, 경제, 종교, 도시 그리고 자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강제 이주와 제노사이드 등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된 이들의 존재 또한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흑해 지역은 에너지와 식량, 안보 등을 매개로 국제 정치·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흑해 세계의 지정학과 그 역사적 연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에너지 정치, 러·우 전쟁이 야기한 곡물 및 원자재 공급 사슬의 변동 등이 흑해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에 더해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의 집착, 튀르키예의 중재자 역할, 조지아와 루마니아의 전략적 선택, 이 모든 것은 역사적 맥락 없이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책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흑해가 어떻게 ‘경계’가 아닌 ‘가교’ 역할을 해왔는지, 역사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킨다.
국제사가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는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을 다룬 베스트셀러 <칩 워>로 한국 독자에도 익숙한 이름이다.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는 방향을 돌려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과 그 실패를 서술한 연대기다.
차르시대 러시아는 캄차카반도를 넘어 알래스카로 진출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캘리포니아에 포트 로스라는 거점을 세우고, 하와이에서도 거점 확보를 모색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모스크바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했고, 볼셰비키 혁명 후 스탈린은 아시아를 공산주의 확산에 유리한 영향권으로 바라보며 패권을 추구했다. 1881년 도스토옙스키는 “유럽에서 우리는 들러리이자 노예였지만, 아시아에서 우리는 주인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러시아는 유럽인가, 아시아인가. 책에선 러시아가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서 진자처럼 오가며 주기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러시아가 아시아에 집중했던 시기, 이를테면 러일전쟁을 치렀을 때, 공산주의를 중국에 전파했을 때, 한국전쟁 국면에서도 서방 열강과의 관계가 행동의 동기로 작용했다고 본다.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미치려는 투쟁은 종종 유럽에서 러시아의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팽창주의적 꿈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러시아의 야망이 반복적으로 국가 역량을 초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에선 일반 독자도 읽기 쉽도록 ‘러시아령 아메리카’,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 흥미로운 일화와 사실들을 엮어 유려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과거의 역사를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 푸틴의 ‘신동방 정책’과 시진핑 중국과의 밀착, 최근 관심이 높아진 북극항로 개발의 역사적 뿌리를 추적한다. 오늘날 급변하는 유라시아 지정학을 바라보는 냉철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프랑스의 역사인류학자 에마뉘엘 토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서방 세계의 구조적 위기를 분석한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군사행동에서 출발하는 책은 이 전쟁이 세계 질서의 균열을 가시화한 사건이며, 그 중심에는 서방 문명의 구조적 위기가 놓여 있다고 본다.
저자는 전쟁을 둘러싼 서방의 반응에서 공통된 패턴을 발견한다. 토론은 사라지고 도덕적 확신만이 남았으며, 분석은 신념으로 대체되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규범의 언어는 반복되지만 현실의 전개를 이해하거나 예측하는 데는 무력해진다. 이러한 구조는 서방 민주주의의 도덕적 우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 능력의 약화를 드러내는 징후라고 진단한다. 또한 전쟁은 서방의 물자 생산 능력, 산업 기반, 사회적 응집력 같은 근본 조건도 냉정하게 드러냈다.
또한 책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미국은 서방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서방 위기의 핵심 사례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군사적 기제는 유지되고 있지만, 그것을 정당화하고 사회를 통합해 온 문화적·도덕적 중심은 이미 약화되었다. 제조업 기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지속되는 군사적 개입, 현실과 유리된 엘리트의 의사결정, 그리고 전략적 목표가 불분명한 전쟁 참여는 합리적 선택보다는 관성의 산물에 가깝다고 본다. 미국의 구조적 취약성이 전쟁을 통해 드러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방의 몰락’을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비롯한 이 위기를 인류학의 시각에서 진단하며 오늘날의 세계를 해석한다. 전쟁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토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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