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구독자 늘리기 [고병권의 묵묵]이기적인 조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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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6-05-31 09:07본문
유튜브 구독자 늘리기 제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지난주 대학로에서 열렸다. 3일간 모두 12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폐막작인 황나라 감독의 <이기적인 조선동>에서 아주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탈시설 장애인 조선동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이번 영화제에서 박종필상(감독상)을 수상했다.
조선동은 최중증뇌병변 장애인이자 언어장애인이다. 처음부터 장애가 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원래 잘 걷고 뛰던 사람”이었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들장애인야학 사람들과 이곳저곳 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그러다 어느 해부턴가 누워 지내야만 할 정도로 장애가 심해졌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경기도 가평의 시설에 보냈다. ‘이제 내 삶에는 기대할 것이 없구나.’ 그는 자기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13년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시설이 아닌 종로의 한복판서인간답게 살아갈 욕망의 권리투쟁을 통해서 존엄을 되찾아타협이 아닌 자기에 충실해야
그러던 어느 날 ‘여기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이 솟구쳤다고 한다.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모르겠다.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을 구분할 수 없게 되던 어느 순간, 그의 내면에서 삶의 강한 반발이 일어났던 것 같다. 그는 예전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여기서 나가야겠다고.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탈시설했고, 김포의 자립생활체험홈에서 3년을 지냈다. 거기서 그렇게 자립을 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체험홈 계약만료를 하루 앞두고, 그는 갑자기 지원 활동가들에게 “난 내일 서울로 갈 거다. 그런 줄 알아라”라고 통보했다.
이렇게 해서 서울 한복판인 종로에서 살겠다는 조선동의 고집스러운 투쟁이 시작되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조선동. 그에게는 계획도, 돈도 없었다. 오로지 서울 종로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막무가내로 살 집과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해달라며 농성하는 그를 두고 시청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실 말문이 막힌 건 공무원만이 아니었다. 활동가들도 그의 상경을 극구 만류했다. 서울에는 장애인지원주택이 너무나 부족했고 특히 종로에는 그런 주택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기도에서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서울시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그만큼의 시간을 제공하지 않았다. 최중증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집도 없이 지낸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활동가들은 종로구만 아니어도 지원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득했지만, 그는 멜빌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으러 들어가는 마음으로 간 시설에서 나온 저는 대한민국 사회의 중심 종로구에서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죽음과 대면하고서 돌아선 삶의 욕망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활동가들은 종로에서의 자립생활을 지지하는 운동을 함께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그가 아니라 최중증 장애인의 이주를 근본적으로 차단한 서울시와 종로구에 있었다. 서울시는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충분히 편성하지 않았고, 종로구는 최중증 장애인이 구할 수 있는 지원주택을 하나도 갖추지 않았다. 조선동과 활동가들은 ‘조선(동) 독립투쟁단’을 결성하고 농성장과 사무실에서 생활하며 오랫동안 투쟁했다.
투쟁 231일. 마침내 그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저소득층 중증장애인 주택보증금 임대 사업을 통해 종로구에서 살 집을 구했다. 24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도 쟁취했다. 투쟁의 성과는 더 있었다. ‘이기적인 조선동’의 투쟁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에 대한 전국적 재조사를 이끌어냈고 이를 통해 장애인 154명이 더 많은 시간을 지원받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의 투쟁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결정하는 종합조사표의 문제와 지역 간 편차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종합조사표 형태로 존속하고 있는 장애등급제의 ‘진짜 폐지’ 투쟁으로 발전했다.
사실 내가 <이기적인 조선동>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개인적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실태조사를 위해 몇년 전 장애인 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방구석에서 벽을 향해 모로 누워 있는 장애인을 보았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사회에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 시설을 생각할 때마다 그 사람의 등이 떠오르곤 했다. 조선동은 내게 정면으로 돌아선 그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나’의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 조선동, “자기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만 하는” 이기주의자 조선동, “타협이나 조정이 안 되는” 고집 센 조선동. 그의 욕망은 참으로 혁명적이다. 혁명을 욕망해서가 아니라 자기 욕망에 충실하기에 그렇다. 영화제 폐막식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말했다. “나는 욕망이 가득합니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이 아주 많습니다.”
조선동은 최중증뇌병변 장애인이자 언어장애인이다. 처음부터 장애가 심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원래 잘 걷고 뛰던 사람”이었다.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들장애인야학 사람들과 이곳저곳 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그러다 어느 해부턴가 누워 지내야만 할 정도로 장애가 심해졌다. 가족들은 그런 그를 경기도 가평의 시설에 보냈다. ‘이제 내 삶에는 기대할 것이 없구나.’ 그는 자기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13년의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시설이 아닌 종로의 한복판서인간답게 살아갈 욕망의 권리투쟁을 통해서 존엄을 되찾아타협이 아닌 자기에 충실해야
그러던 어느 날 ‘여기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생각이 솟구쳤다고 한다.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모르겠다. 살아가는 일과 죽어가는 일을 구분할 수 없게 되던 어느 순간, 그의 내면에서 삶의 강한 반발이 일어났던 것 같다. 그는 예전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여기서 나가야겠다고.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그는 탈시설했고, 김포의 자립생활체험홈에서 3년을 지냈다. 거기서 그렇게 자립을 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체험홈 계약만료를 하루 앞두고, 그는 갑자기 지원 활동가들에게 “난 내일 서울로 갈 거다. 그런 줄 알아라”라고 통보했다.
이렇게 해서 서울 한복판인 종로에서 살겠다는 조선동의 고집스러운 투쟁이 시작되었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조선동. 그에게는 계획도, 돈도 없었다. 오로지 서울 종로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에요?” 막무가내로 살 집과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해달라며 농성하는 그를 두고 시청 직원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실 말문이 막힌 건 공무원만이 아니었다. 활동가들도 그의 상경을 극구 만류했다. 서울에는 장애인지원주택이 너무나 부족했고 특히 종로에는 그런 주택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경기도에서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서울시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그만큼의 시간을 제공하지 않았다. 최중증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집도 없이 지낸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다. 활동가들은 종로구만 아니어도 지원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득했지만, 그는 멜빌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으러 들어가는 마음으로 간 시설에서 나온 저는 대한민국 사회의 중심 종로구에서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 죽음과 대면하고서 돌아선 삶의 욕망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활동가들은 종로에서의 자립생활을 지지하는 운동을 함께하기로 했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그가 아니라 최중증 장애인의 이주를 근본적으로 차단한 서울시와 종로구에 있었다. 서울시는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충분히 편성하지 않았고, 종로구는 최중증 장애인이 구할 수 있는 지원주택을 하나도 갖추지 않았다. 조선동과 활동가들은 ‘조선(동) 독립투쟁단’을 결성하고 농성장과 사무실에서 생활하며 오랫동안 투쟁했다.
투쟁 231일. 마침내 그는 서울시가 지원하는 저소득층 중증장애인 주택보증금 임대 사업을 통해 종로구에서 살 집을 구했다. 24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도 쟁취했다. 투쟁의 성과는 더 있었다. ‘이기적인 조선동’의 투쟁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에 대한 전국적 재조사를 이끌어냈고 이를 통해 장애인 154명이 더 많은 시간을 지원받게 되었다. 더 나아가 그의 투쟁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결정하는 종합조사표의 문제와 지역 간 편차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종합조사표 형태로 존속하고 있는 장애등급제의 ‘진짜 폐지’ 투쟁으로 발전했다.
사실 내가 <이기적인 조선동>에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개인적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실태조사를 위해 몇년 전 장애인 시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방구석에서 벽을 향해 모로 누워 있는 장애인을 보았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 사회에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 시설을 생각할 때마다 그 사람의 등이 떠오르곤 했다. 조선동은 내게 정면으로 돌아선 그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나’의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돌아온 사람 조선동, “자기 하고 싶은 것을 꼭 해야만 하는” 이기주의자 조선동, “타협이나 조정이 안 되는” 고집 센 조선동. 그의 욕망은 참으로 혁명적이다. 혁명을 욕망해서가 아니라 자기 욕망에 충실하기에 그렇다. 영화제 폐막식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말했다. “나는 욕망이 가득합니다. 나는 가지고 싶은 것이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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