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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자리’ 이주배경청년·은퇴 노년, 지역 ‘가장 필요한 자리’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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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05-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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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배경청소년과 노인은 ‘사회적 약자’라는 단선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공헌자’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저출생과 지역 불균형 발전 추세로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며, 경제활동과 돌봄을 통해 지역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이주배경청소년과 노인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다가온 미래’의 현장을 보고 왔다. 지난 2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전체의 20% 이상)에 진입한 전북 군산시와 공단지대가 있는 경기 안산시를 각각 찾았다.
성인이 된 한 이주배경청년은 간호사로 일하며 노인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은퇴한 노인들은 수십년간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이주배경청소년, 이주민과 나누고 있었다.
두 인구집단은 공공·민간 서비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소통, 상생하며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사회복지가 필요한 기관과 가정, 일손이 필요한 기업 등 곳곳의 틈을 메우고 있다.
의료 공백 메운 ‘군산 나이팅게일’
박은혜씨(30)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부터 지역 의료 현장을 지킨 7년차 간호사다. 박씨의 고향은 낙조가 아름다운 군산시 신시도다.
아버지 박병근씨(68)는 1994년 필리핀 북부 망카얀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마주친 동네주민에게 반했다. 아내 아르세니아 나세요씨(55)는 대학교를 졸업한 직후 의류회사에서 옷감 품질관리를 하던 참이었다. 컴퓨터 보급 이전, 약 2200㎞ 떨어진 곳에서 1년 반 동안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1996년 결혼했다.
어부였던 ‘신시도 양관식’ 병근씨와 ‘필리핀 새댁’ 나세요씨는 두 딸을 키웠다. 박은혜씨는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노인 홀로 끌던 손수레를 같이 밀어주고, 매일 아침 학교에 제일 먼저 도착해 교실 청소를 도맡았다. “도움 주면 어르신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거나, 친구들이 칭찬하는 것에 기분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작은 섬마을에선 서로 돕는 게 당연하기도 했고요.”
그늘진 기억도 품고 있다. 일부 중학교 동창은 어눌하게 말하며 박씨를 놀리거나 그의 가방을 숨겼다. 박씨는 “사람들이 다문화청소년에 대한 편견을 안 갖게 하려고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다”며 “공부를 잘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 박씨는 아버지의 권유로 간호학과에 진학했다. 2020년 군산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박씨는 비수도권의 의료 공백을 메웠다. 한여름에도 전신 보호복과 실드 마스크, 이중 장갑을 착용한 채 환자를 돌봤다. 이후 그는 전북 전주시와 부산에 있는 병원에서 일했다.
전북 공공보건의료지원단이 집계한 2024년 전주시와 군산시의 인구 1000명당 의사·간호사 수는 각각 4.955명(의사 3.56명, 간호사 6.35명), 3.42명(의사 2.5명, 간호사 4.34명)이다. 서울(의사 3.61명, 간호사 6.48명)에 비해 적다.
반면 두 지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8~23%에 달하는 만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높다.
박씨가 최장기인 2년7개월 근무한 곳은 전주에 있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이다. 간병인을 구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입원하는 병원으로, 주로 노인들이 입원한다. 박씨는 이곳에서 하루 평균 12명의 환자를 돌봤다.
“제 맨얼굴을 보고 ‘까맣네’라고 말씀하신 어르신도 계셨어요. 엄마가 필리핀인이라고 밝히면 ‘그래? 내가 말실수했네’라고 받아치셨죠.”
심리적으로 극한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반복됨에도 박씨는 버텼다. 일을 시작한 첫해, 수술방에 누운 환자가 죽음의 문턱에 도달한 모습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의료진의 처치로 중증환자가 회복하는 상황을 여러 번 보면서 간호사로서 소명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두 나라의 문화를 접하며 자란 박씨의 배경은 환자를 대할 때 도움이 됐다. “꾸마인 까 나 바(식사는 했나요)?” “살라마토(감사합니다)”라며 어머니로부터 배운 타갈로그어(필리핀 공용어)로 말을 건네거나, “우리 엄마도 필리핀 사람”이라고 알리면 이주민 환자들은 긴장을 풀었다.
박씨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병간호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일을 그만뒀다.
두 딸에게 진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아내에게 다정히 한국어를 가르치던 그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말수는 현저히 줄어들었고 무표정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군산 시내에 사는 박씨는 매일 아침 아버지를 요양센터로 데려다준다. 병원에도 동행한다. 그는 간호사에서 환자 보호자가 되어 근무했던 병원을 다시 찾게 됐다.
나세요씨와 박씨의 동생은 신시도에 남아 숙박·요식업을 하며 생계를 맡고 있다. 한국어 한마디 하지 못했을 때 타지로 왔던 나세요씨는 이제는 한국 요리 달인이 됐다. 남편을 세심하게 간병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시험도 준비 중이다. 문제집에는 ‘비가역적 진행’ ‘잔존능력 저하’ 등 어려운 용어투성이다.
나세요씨는 한국 사회에서 요양보호사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이민자의 시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세요씨도 한 차례 시험에서 떨어졌다.
요양보호사 실습을 했던 나세요씨는 “아픈 환자들이 욕하면서 함부로 말할 때도 있었다. 간호사들이 얼마나 힘든지, 딸의 마음을 많이 느꼈다”며 “그래도 성격이 밝은 은혜에겐 이 직업이 딱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항공승무원, 사회복지사가 되길 꿈꾼 박씨는 지금도 하고 싶은 게 많다. 구급대원에도 도전해보고자 틈틈이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환자를 가장 먼저 처치하는 역할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 역시도 가족센터나 이웃들의 도움을 받고 자랐습니다. 지금은 다문화청년들이 노인을 돌보고 있고, 언젠간 이들도 노인이 돼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오겠죠?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대기업 이 과장’에서 한국어 선생님까지
안산에 있는 한 아파트 건물 상가에는 ‘고려어학원’이란 특별한 교실이 있다. ‘설 연휴에 무엇을 하고 보냈나요?’ “17일 에버랜드 있었어요. 그리고 16일 친구와 놀았어요.”
마리아양(15·가명)이 또박또박 대답하자 같은 반 친구들이 손뼉을 쳤다. 러시아에서 온 그는 고려인의 후손이다.
지난 2월19일 오전 10시50분, 교실에 있던 6명의 학생은 15~17세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온 중도입국 이주배경청소년이다. 모두 고려인 4~5세다. 2019년 세워져 유치부부터 11학년이 다니는 이 대안학교는 5월 10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덕근씨(68)는 이곳에서 평일 하루 3시간씩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2024년부터 출근한 그는 올해 3년차 교사다. 이씨의 2월 월급명세서에 찍힌 실수령액은 73만100원. 급여는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기관 등이 지원한다. 10개월 계약직으로, 매년 재신청할 수 있다.
안산은 외국인 인구 비중이 약 13.3%를 차지하는 글로벌 도시다. 1990년대부터 이주노동자들이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로 몰려들었다. 단원구 원곡동 일대는 2009년 다문화특구로 지정됐다.
단원구 선부2동에는 고려인 정착촌인 떼꼴마을이 있다. 이곳 부모들은 대부분 반월·시화공단으로 출근한다. 일부 부모들은 러시아어를 쓰는 친구들이 모여 있고, 러시아어와 한국어, 수학 등 과목을 두루 배울 수 있는 고려어학원으로 자녀를 보낸다. 학비는 월 35만~50만원이다.
이씨는 지인으로부터 단원시니어클럽에서 ‘다문화 분야’ 일자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다. 서류 심사와 2차례에 걸친 면접을 통과했다.
그가 이주배경청소년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2015년 시작한 교회 봉사활동이었다. 이주민과 병원에 동행하거나, 이주노동자의 임금체불 피해 신고를 도왔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받는 이씨는 생계 목적보다는 이주배경청소년의 자립을 돕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원시니어클럽은 공익활동(16개), 역량활용(17개), 공동체사업단(18개) 등 분야 일자리에서 노동자를 매년 구하고 있다. 올해에는 2014명을 모집했다. 장애인, 노인, 아동 등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있는 곳곳에 노인들이 배치된다.
이씨에게 교사 일은 쉽지만은 않다. 대부분 학생은 기초 한국어조차 모르고, 수준이 학생마다 천차만별이다. 일부 교사들은 파워포인트(PPT)로 수업자료를 만들지만, 이씨는 ‘효율이 나지 않아’ PPT 제작을 안 했다. 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컴오피스의 한글을 사용하던 ‘얼리어답터’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 365 프로그램은 익숙지 않다.
‘58년 개띠’인 이씨는 서울 성북구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어학을 전공했다. 1989년 입사한 한화그룹 계열 삼희관광이 첫 직장이었다. 당시 여행사들은 1992년 중국 수교를 앞두고 현지 관광상품 개발에 몰두했다. 이씨가 있던 팀은 지린성 광개토대왕릉비를 방문하는 고구려 역사 기행 상품을 만들었고, 그는 실크로드를 따라 한국 학자들을 인솔하기도 했다.
과장 직함을 달았던 이씨는 회사를 관두고 삼성전자 컴퓨터를 사업장에 직판하는 매장을 열었다. 그해는 1997년. 외환위기가 한국을 덮쳤고 이씨는 얼마 못 가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지인 사업을 돕다가 2002년 안산시에 정착했다.
이씨의 수첩에는 학생들의 꿈이 적혀 있다. 영어 선생님, 통역사, 변호사, 엔지니어… “2024년 처음 왔을 때 한국어를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애가 있었어요. 화성시 어천역에서 여기까지 매일 왔죠. 꿈이 물리학자이고, 한국에 남겠대요.”
그는 한국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주배경청소년을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또 이주배경청소년이 언어 장벽을 넘어야 한국에 잘 적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한국말을 못해 일을 구하지 못하다가 사고를 치는 이도 있었다”며 “이 친구들이 사회에 적응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힘들고 여럿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늦은 시간에서야 퇴근하는 중도입국 이주배경청소년의 부모는 자녀 교육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비정부기구인 기아대책이 지난해 7월 15~29세 이주배경청년·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50%가 ‘학창 시절 친구들만큼 학교생활이나 공부를 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한국의 환경이 낯설고 익숙지 않아서’(25%),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서’(24%), ‘사교육을 받지 못해서’(19%) 등을 꼽았다.
“가르치는 건 내 인생 최고의 기쁨”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김태호씨(67)는 2024년부터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에서 학생들에게 일본어·영어를 가르쳤다. 초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선주민과 이주민, 이주배경청소년 등이 찾았다.
그는 자동차부품 제조회사에서 35년간 품질관리, 해외영업, 제품개발 등을 해왔다. 프랑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 발레오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는 영어 등 어학능력을 쌓았다. 정년퇴임 이후 그를 기다린 건 우울감과 불면이었다. 그러다 ‘제2의 삶’을 살면서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김씨는 “전 직장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일은 내 인생 최고의 기쁨”이라며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과 봉사를 통해 내 안에 있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도서관이 다문화 커뮤니티의 중추적 역할을 하길 기대했지만, 안산시 예산이 끊기며 도서관은 지난 3월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 일을 하면서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차별, 혐오를 많이 느꼈죠. 이젠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류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하는 공간이 중요해요.”
혁명을 준비하는 시간
갈 베커만 지음 | 손성화 옮김
어크로스 | 496쪽 | 2만5000원
혁명은 어디서 잉태되는가. 광장의 ‘팔뚝질’인가, 정치범이 갇힌 감옥을 습격한 민중의 쇠스랑인가. 아니면 17세기 프랑스 노인의 편지, 신문의 독자 투고란, 가위와 딱풀로 만든 소녀들의 잡지인가. 갈 베커만은 말한다. “변화는 서서히 시작된다. 사람들은 다짜고짜 왕의 목을 베지 않는다.”
미디어 연구자이자 뉴욕타임스 북 리뷰 편집자, 애틀랜틱 도서 담당 수석 에디터를 역임한 저자는 ‘세상을 바꿀 위험한 생각’이 나타나는 과정을 살핀다. 핵심은 미디어를 통해 조심스럽게 전파된 소수의 농익은 생각과 고요한 대화다. 한국어판 제목은 좀 더 직설적으로 읽히지만, 원서 제목은 ‘The Quiet Before’(그 이전의 적막)다.
니콜라클로드 파브리 드 페이레스크(1580~1637)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부유하면서 열정적인 자연철학자였던 그는 생전 단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업적은 ‘편지’였다. 우편이 신속해지고 상대적으로 믿을 만했던 시대, 페이레스크는 지중해 전역의 아마추어 관찰자 수십명을 섭외하고 설득하고 교육해 한날한시에 월식을 관찰하게 했다. 몇달에 걸쳐 모은 관찰값으로 그는 잘못 알려졌던 지중해의 크기를 새로 계산했다.
시대가 흐르며 미디어는 달라졌다. 편지가 “천천히 진행되는 사고 활동이 흘러가는 파이프”였다면, 청원서는 수많은 사람의 좌절감이 압축된 공동 창작물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퍼거스 오코너(1796~1855)는 직물공, 광부, 방직공, 선술집 주인 등 128만여명의 이름이 담긴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청원서에는 보통선거권을 달라는 요구가 담겨 있었다. 오코너는 시위 현장의 폭발성 대신, 서명을 모으는 과정의 엄숙함, 친밀함, 교육적 가치를 믿었다. 수차례의 청원 운동은 결국 선거권 쟁취로 이어졌다.
영국인들은 스스로 ‘선량한 제국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식민지였던 서아프리카 골드코스트에 언론 자유를 허용했던 이유다. 영국인들이 신문은 ‘격변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국 유학파 아프리카인들은 1930년대 초부터 고국에 돌아와 신문을 창간했다. 이 지면에서 아프리카 식민지인들의 자의식이 깨어났다. 많은 기자를 채용할 예산이 없던 신문들은 여러 지면을 독자 기고로 채웠고, 지면은 곧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이 됐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미국의 소녀들은 조악한 잡지를 발행했다. 하긴 ‘조악하다’는 건 기성세대의 평가다. 소녀들은 펑크 문화의 자유, 반권위주의를 받아들였지만 거기에 내재한 과도한 남성성은 거부했다. 엄마 세대가 신봉한 ‘향냄새 나는 페미니즘’엔 끌리지 않았다. 대학 여성학 수업에서 ‘여자애’(girl)라는 말을 ‘여성들’(woman)이라고 바로잡는 교수에게 짜증을 느꼈다. 소녀들은 뜬구름 잡는 이론 대신 성폭행, 섭식장애 같은 소재를 직설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으로 잡지에 담았다. 방에서 DIY로 잡지를 만들고 의회 도서관 복사기로 복사한 뒤 자신들의 펑크 공연장에서 배포했다. ‘분노한 소녀들’이 만든 출판물이자 반(反)출판물인 이 잡지들은 1993년 미국에서 수천개에 달했다.
인터넷은 모든 걸 바꾸었다. 어쩌면 이 책 전반부가 다룬 17세기 초반~1990년대보다 후반부에서 다룬 인터넷 도입 이후에 더 많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소셜미디어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나’로 요약될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부정적이다. 2010년 이집트 경찰에게 맞아 죽은 젊은 프로그래머 칼리드 사이드를 기리기 위해 개설된 페이스북 페이지는 명백히 대규모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군이 다시 개입하며 짧게 끝난 ‘아랍의 봄’은 격렬한 시위가 얼마나 쉽게 흐지부지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페이스북은 “선언을 편애”했고 “눈물에 제격”이었지만, 그람시가 말한 ‘역사 블록’을 형성하진 못했다. 역사 블록이란 국가권력 장악에 필요한 첫 단계로, “공유된 이념에 뿌리를 둔, 동맹과 관계를 중심으로 조율된 연결망”이다. 페이스북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의제를 논의하는 수고” 대신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와 감정”만을 남겼다. 이곳에서 ‘좋아요’라는 화폐는 “피를 가장 많이 흘린” 발언에 대한 보상으로 돌아갔다. 페이스북은 “의도는 고결하지만 집중력이 짧은 십대 남자 친구들 같았다”.
2020년대의 활동가들은 ‘지속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미국 마이애미의 활동가 단체 드림 디펜더스는 트위터 팔로어 수를 기준으로 영향력을 측정하는 세간의 방식에 반발해, ‘블랙아웃’이라는 계획을 실행했다. 이 조직 사람들은 휴대전화에서 소셜미디어 앱을 일정 기간 지웠다. 트위터는 “요령껏 써먹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리더로 치켜세웠지만, 이들은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는 왕”일 뿐이었다. 조지프 나이는 국가의 영향력을 “논쟁과 이야기를 통해 문화를 형성하는 힘”인 소프트파워와 군사력과 경제력을 중심으로 하는 하드파워로 분류했다. 소셜미디어는 하드파워엔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다. 드림 디펜더스는 조용히 오프라인으로 나아가 지역사회 주민들의 고민을 경청하고 입법에 힘썼다.
저자는 “저항의 씨앗을 뿌리는 방법”은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참정권을 위한 청원서든, 현대의 유권자 운동이든, ‘외침’이 아니라 ‘숙의’가 변화의 핵심이다. 인터넷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터넷은 스위스 군용칼처럼 만능이 아니라, 망치처럼 특정한 용도로 사용되는 도구라는 뜻이다. 진짜 혁명은 열기에 찬 광장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조용한 제안에서 시작해, 지난한 숙의로 마무리된다.
12·3 내란 당시 ‘부정선거 의혹’ 관련 수사단을 꾸리려고 요원 정보를 빼낸 혐의로 기소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에게 실형이 확정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불법계엄을 선포한 뒤 내란 관련해서 처음으로 나온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12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된 노상원 전 사령관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249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민간인 신분이었던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 요원들의 인적 정보 등 군사 정보를 넘겨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계엄 이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제2수사단을 구성해서 부정선거 관련 의혹을 수사하려 했다는 것이다. 또 계엄 선포 전인 2024년 8~9월 진급을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김봉규 전 대령과 구삼회 육군 2기갑여단장으로부터 현금 2000만원과 백화점 상품권 600만원 상당을 수수한 혐의도 받았다.
1심 법원은 지난해 12월 공소사실을 전부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2년과 추징금 249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이 윤석열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의 동력이 됐다”며 12·3 계엄 선포의 위법성을 처음으로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지난 2월 항소심 결론도 같았다. 2심 재판부도 “계엄 선포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발생 시 헌법 질서 회복과 같은 소극적 목적을 위해서만 이뤄져야 한다”며 “이런 실체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엄 선포를 상정하고 이에 동조했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노 전 사령관 측은 “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도 이어갔으나, 이 역시 법원에서 기각됐다. 2심 재판부는 “모든 국가 행위는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행해져야 한다”며 “사법부는 그런 고도의 정치적 결단의 부당한 행사에 대해서 헌법과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이날 상고를 기각해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소권 남용,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죄의 성립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최측근으로서 계엄 모의 과정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사건과 별개로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는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2심은 서울고법 내란전담재판부인 형사12부에서 심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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