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코디네이터 [송혁기의 책상물림]제조(製造)와 지조(智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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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7-24 06:04본문
병원코디네이터 널리 사용되다가 언제인가부터 사라져 가는 어휘들이 있다. 미제(美製)라는 말도 그렇다. 가난을 딛고 산업화를 이루려 애쓰던 시절, ‘미제’는 높은 품질을 보장하는 선망의 언어였다. 그 어휘를 별로 쓰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 기술의 벽을 우리가 어느새 넘어서서 그들과 어깨를 겨루게 되면서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미제 대신 많이 사용하게 된 말은 ‘메이드 인 차이나’, 즉 ‘중국제조(中國製造)’라는 말이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던 시기,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공산품에서 볼 수 있는 말이었다. 한동안 가격이 저렴한 대신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주던 표지였지만, 중국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고 있다. 이제 인도나 동남아시아 쪽으로 제조업이 옮겨가고 있고, 한편으로는 글로벌 제조업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특정 국가 제조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지는 면도 있다.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는 ‘중국제조’라는 말에 다시 엄청난 변화가 있으리라는 메시지가 발신된 자리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개막식에서 “‘중국지조(中國智造)’가 중국식 현대화의 빛나는 명함이 되었다”고 말했다. 근래 만들어진 ‘지조(智造)’라는 어휘는 지능형 제조, 즉 인공지능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를 뜻한다. 미국 중심의 AI 판도에 맞서서 세계의 AI 생산과 활용, 지원 체계를 선도하겠다는 야심을 천명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틈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를 점하고 나아가야 할지, 중차대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이 문제에 의견을 내놓을 만한 전문적 식견이나 경험을 지니지 못한 책상물림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국지조’에 지능(知能)의 지(知)가 아닌 지혜(智慧)의 지(智)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인류의 지혜와 국제적 공감대로 인공지능의 발전을 이끌어”야 하며, 이를 위해 “폭넓은 합의에 기반을 둔 글로벌 AI 거버넌스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시 주석의 연설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광폭으로 변화하는 기술 경쟁의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지혜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김동인의 소설 <감자>의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사실 고구마다. 지금의 고구마가 1764년 한반도에 들어와 감자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약 60년 뒤 유입된 지금의 감자에 이름을 뺏긴 것이다.
이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국어학자인 저자는 “유럽에서도 스페인 사람들이 고구마를 potato라고 불렀으나 나중에 감자가 더 많이 전파되며 그 이름을 가져가버렸다”면서 그 이유에 대해 “아무래도 주식으로 삼기에는 감자가 더 제격이었다”고 설명했다. 단맛이 강한 고구마보다 지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월등했던 감자가 더 널리 퍼진 뒤 이름까지 뺏은 것이다.
후추 역시 ‘고쵸’로 불리다 후에 들어온 고추에 이름을 내주고 ‘호초’로 불렸다. 고추가 국내에서 재배가 가능했으므로 수입에 의존했던 후추를 대체하며 벌어진 일이다. 저자는 “언어와 문화의 세계에서 먼저 시작한 것보다 끝까지 삶에 밀착하는 것이 얼마나 더 강력한지 보여준다”면서 “내실을 다지며 본질을 채워나갈 수 있다면 늦게 시작한 여정은 깊이 사랑받는 반전의 서사를 완성해낼 것”이라고 했다.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쓰이는 지역에 따라 변화한다. 책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의 어원과 쓰임새의 변화, 오해 등을 설명한다. ‘대장균’은 대장에 사는 균을 총칭하는 말인데, 일반적인 식품 검사에서 검출되는 대장균은 대부분 인체에 무해한 균이다. 이때의 대장균은 음식이 외부 환경에 노출됐다는 지표로 쓰일 뿐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데, 언론 보도 등으로 나쁜 인식이 굳어졌다. 저자는 “대장균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것”이라며 “우리는 단어의 엄밀한 정의보다 그것이 소비되는 맥락과 문화적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을 때도 많다”고 했다.
아령(啞鈴)이 ‘울리지 않는 종’이라는 dumbbell을 직역한 말이라는 것, 낭만은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roman을 음차한 단어라는 것 등 다양한 언어 지식도 책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미국 정치에서 불온한 단어였다. 유럽 주요 국가에는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등을 표방하는 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매카시즘 같은 극단적 반공주의 영향으로 사회주의가 금기어가 돼왔다. 오랜 금기를 깨뜨린 이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스스로를 “민주사회주의자”라 칭한 샌더스는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공립대학 무상교육·모두를 위한 의료보험 등 ‘급진적’ 공약을 국가적 의제로 승격시켰다. 이를 계기로 비영리법인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 회원이 급증했다. DSA는 민주당 당적을 활용해 선거에 출마한다. 2018년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시키는 쾌거를 거뒀다.
한동안 침체하던 DSA의 부활을 알린 건 지난해 11월 뉴욕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다. 34세, 우간다 출생, 인도계, 무슬림. 소수자 정체성이 겹치고 겹친 그는 ‘생활물가’라는 연대의 언어로 “노동계층, 중산층, 상위중산층을 한데 묶어냈다”(뉴욕타임스). 임대료 동결·시내버스 무료화·무상보육으로 유권자를 사로잡았다. 임기 6개월이 지나 실시된 시에나대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58%)가 부정 평가(26%)를 압도했다.
맘다니의 성공에 힘입어 민주사회주의 돌풍은 계속되고 있다. 클레어 발데스, 브래드 랜더, 다리알리자 아빌라 슈발리에, 멜라트 키로스 등이 뉴욕주와 콜로라도주 하원의원 경선에서 주류 정치인들을 꺾고 11월 중간선거에 나설 민주당 후보가 됐다.
한국계 프란체스카 홍(37·한국명 홍윤정)은 DSA 정치인 중 처음으로 주지사 선거에 나섰다. 민주당 위스콘신 주지사 경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소득 불평등을 “가장 심각한 재앙”으로 꼽았다. “한쪽에선 ‘조만장자’(자산 1조달러 이상)가 탄생하는데 위스콘신주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다. 어떤 노동자도 육아와 월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아선 안 된다.”
진보든 보수든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터다. 전당대회를 앞둔 한국의 더불어민주당도 ‘친명이냐 친청이냐’ 말고 ‘불평등 완화’ 같은 이슈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했으면 좋겠다. 강령 전문에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고 써놓은 당 아닌가.
그러면서 미제 대신 많이 사용하게 된 말은 ‘메이드 인 차이나’, 즉 ‘중국제조(中國製造)’라는 말이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던 시기, 우리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공산품에서 볼 수 있는 말이었다. 한동안 가격이 저렴한 대신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주던 표지였지만, 중국의 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고 있다. 이제 인도나 동남아시아 쪽으로 제조업이 옮겨가고 있고, 한편으로는 글로벌 제조업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더 이상 특정 국가 제조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지는 면도 있다.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는 ‘중국제조’라는 말에 다시 엄청난 변화가 있으리라는 메시지가 발신된 자리였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개막식에서 “‘중국지조(中國智造)’가 중국식 현대화의 빛나는 명함이 되었다”고 말했다. 근래 만들어진 ‘지조(智造)’라는 어휘는 지능형 제조, 즉 인공지능 기반의 스마트 팩토리를 뜻한다. 미국 중심의 AI 판도에 맞서서 세계의 AI 생산과 활용, 지원 체계를 선도하겠다는 야심을 천명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틈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를 점하고 나아가야 할지, 중차대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이 문제에 의견을 내놓을 만한 전문적 식견이나 경험을 지니지 못한 책상물림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국지조’에 지능(知能)의 지(知)가 아닌 지혜(智慧)의 지(智)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인류의 지혜와 국제적 공감대로 인공지능의 발전을 이끌어”야 하며, 이를 위해 “폭넓은 합의에 기반을 둔 글로벌 AI 거버넌스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시 주석의 연설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광폭으로 변화하는 기술 경쟁의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지혜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김동인의 소설 <감자>의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사실 고구마다. 지금의 고구마가 1764년 한반도에 들어와 감자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약 60년 뒤 유입된 지금의 감자에 이름을 뺏긴 것이다.
이 현상은 한국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국어학자인 저자는 “유럽에서도 스페인 사람들이 고구마를 potato라고 불렀으나 나중에 감자가 더 많이 전파되며 그 이름을 가져가버렸다”면서 그 이유에 대해 “아무래도 주식으로 삼기에는 감자가 더 제격이었다”고 설명했다. 단맛이 강한 고구마보다 지력을 거의 소모하지 않고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월등했던 감자가 더 널리 퍼진 뒤 이름까지 뺏은 것이다.
후추 역시 ‘고쵸’로 불리다 후에 들어온 고추에 이름을 내주고 ‘호초’로 불렸다. 고추가 국내에서 재배가 가능했으므로 수입에 의존했던 후추를 대체하며 벌어진 일이다. 저자는 “언어와 문화의 세계에서 먼저 시작한 것보다 끝까지 삶에 밀착하는 것이 얼마나 더 강력한지 보여준다”면서 “내실을 다지며 본질을 채워나갈 수 있다면 늦게 시작한 여정은 깊이 사랑받는 반전의 서사를 완성해낼 것”이라고 했다.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쓰이는 지역에 따라 변화한다. 책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의 어원과 쓰임새의 변화, 오해 등을 설명한다. ‘대장균’은 대장에 사는 균을 총칭하는 말인데, 일반적인 식품 검사에서 검출되는 대장균은 대부분 인체에 무해한 균이다. 이때의 대장균은 음식이 외부 환경에 노출됐다는 지표로 쓰일 뿐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닌데, 언론 보도 등으로 나쁜 인식이 굳어졌다. 저자는 “대장균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것”이라며 “우리는 단어의 엄밀한 정의보다 그것이 소비되는 맥락과 문화적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을 때도 많다”고 했다.
아령(啞鈴)이 ‘울리지 않는 종’이라는 dumbbell을 직역한 말이라는 것, 낭만은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roman을 음차한 단어라는 것 등 다양한 언어 지식도 책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
‘사회주의’는 미국 정치에서 불온한 단어였다. 유럽 주요 국가에는 사회민주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 등을 표방하는 정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에선 매카시즘 같은 극단적 반공주의 영향으로 사회주의가 금기어가 돼왔다. 오랜 금기를 깨뜨린 이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스스로를 “민주사회주의자”라 칭한 샌더스는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공립대학 무상교육·모두를 위한 의료보험 등 ‘급진적’ 공약을 국가적 의제로 승격시켰다. 이를 계기로 비영리법인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 회원이 급증했다. DSA는 민주당 당적을 활용해 선거에 출마한다. 2018년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를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시키는 쾌거를 거뒀다.
한동안 침체하던 DSA의 부활을 알린 건 지난해 11월 뉴욕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다. 34세, 우간다 출생, 인도계, 무슬림. 소수자 정체성이 겹치고 겹친 그는 ‘생활물가’라는 연대의 언어로 “노동계층, 중산층, 상위중산층을 한데 묶어냈다”(뉴욕타임스). 임대료 동결·시내버스 무료화·무상보육으로 유권자를 사로잡았다. 임기 6개월이 지나 실시된 시에나대 여론조사에서 긍정 평가(58%)가 부정 평가(26%)를 압도했다.
맘다니의 성공에 힘입어 민주사회주의 돌풍은 계속되고 있다. 클레어 발데스, 브래드 랜더, 다리알리자 아빌라 슈발리에, 멜라트 키로스 등이 뉴욕주와 콜로라도주 하원의원 경선에서 주류 정치인들을 꺾고 11월 중간선거에 나설 민주당 후보가 됐다.
한국계 프란체스카 홍(37·한국명 홍윤정)은 DSA 정치인 중 처음으로 주지사 선거에 나섰다. 민주당 위스콘신 주지사 경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그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소득 불평등을 “가장 심각한 재앙”으로 꼽았다. “한쪽에선 ‘조만장자’(자산 1조달러 이상)가 탄생하는데 위스콘신주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다. 어떤 노동자도 육아와 월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아선 안 된다.”
진보든 보수든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터다. 전당대회를 앞둔 한국의 더불어민주당도 ‘친명이냐 친청이냐’ 말고 ‘불평등 완화’ 같은 이슈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했으면 좋겠다. 강령 전문에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고 써놓은 당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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