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간녀소송 “한국, 12·3 불법계엄 이후 민주주의 회복에도…국제사회 ‘불완전성’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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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1회 작성일 25-12-11 12:28본문
12·3 비상계엄 1년을 앞둔 지난달 27일 ‘12·3 이후, 쟁점으로 보는 2025 현재사’ 연속 시민강좌 마지막회의 주제는 ‘복합위기 속 한국 민주주의의 전망과 과제’였다. 강의를 진행한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극우 문제에 대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로, 12·3 이후 우리 사회 주요 담론들을 주도해왔다. 이날 강의 중 자주 나온 “믿어지지 않지만” “상상할 수 없지만”이라는 말들이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상징하는 듯했다.
글로벌 복합위기, 세계 민주주의 위협
“세계 금융위기, 경제적 불평등, 기후변화, 팬데믹, 전쟁, 테러리즘, 권위주의 확산과 같은 여러 글로벌 위기가 동시에 일어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음에 따라 불확실성이 커지고, 통제 가능성이 약화되며, 문제 해결의 선택지가 제한되는 상황.”
신 교수는 ‘글로벌 복합위기’를 이같이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글로벌 복합위기는 여러 난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또 터진 다음 문제들이 누적되며 해결을 어렵게 한다. 신 교수는 이 같은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기존 정치세력들이 대응에 한계를 보일 때가 많은데, 그런 한계가 바로 ‘기득권 엘리트’를 비판하고 단순명쾌한 해결책을 약속하는 포퓰리즘, 사회적 약자들을 ‘공공의 적’으로 지목해 희생양으로 삼는 극단주의, 강력한 지도자가 나와 한 번에 문제를 다 해결해야 한다는 권위주의 등 비민주적인 정치세력이 부상하는 토양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2020년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함께 자유통일당이라는 극우정당을 창당한 전광훈이 보수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계까지 왔고, 미국도 건국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한 유형의 정치지도자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했다. 바로 극우 포퓰리즘 정치가 주류화되는 과정들이라는 설명이다.
신 교수에 따르면 1900년 이후 민주주의 체제 나라의 비율이 급등하는 3차례의 민주화 물결이 있었는데, 2010년대 들어서는 글로벌 복합위기를 발판으로, 전 세계적으로 독재화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급속 퇴행과 12·3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은 이런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진행돼왔다. 가장 신뢰받는 민주주의 연구 데이터 중 하나인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의 V-Dem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이후 38년을 대략 전반부 20년, 후반부 20년이라고 할 때 전·후반부의 추이가 달라진다. 노태우·김영삼 보수정권을 거쳐 김대중·노무현 진보정권으로 이어지는 전반부는, 어느 쪽이 집권했건 간에 우리나라의 모든 면에서 민주주의가 신장되는 추세를 나타낸다.
그런데 후반 20년으로 오면, 민주주의 평가 결과가 갑자기 곤두박질하다가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끝난다. 신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성격은 독재와 민주주의 중 하나만 고르라면 독재체제는 아니었지만, 민주주의의 여러 측면이 심각하게 부식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촛불집회 이후엔 정권교체가 되면서 2021년 민주주의 평가가 급등해 세계 16~17위로 올라갔다. 1987년 이후 가장 높은 순위다. 그러곤 2년 반 만에 비상계엄이 일어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될 때 극우라고 밝히며 당선된 것이 아니잖아요. ‘상식과 공정’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중도를 끌어들여 권력을 잡았는데, 권력을 잡고 나선 그 권력을 이용해 국가를 친 거죠. 불과 1년 반밖에 안 걸렸어요.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민주주의를 갖고 있었는지를 알려준 역사적인 경험을 한 겁니다.”
신 교수에 따르면 12·3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이후 국제적인 평가 보고서들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발전된 민주주의가 아니고 최소 수준의 선거 민주주의라고 했다. 이 범주로 강등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을 제외한 그 어느 나라에서도 군사작전을 벌여 국회를 점령한 나라는 없다. 신 교수는 “그 심각성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민주주의와 헌법을 존중하는 정당들이 서로 경쟁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12·3 계엄으로 ‘민주주의와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의 경쟁’이라는 룰이 깨진 것이다.
“사실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전환된 나라들 중에서 우리나라처럼 빠르게 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가 많지 않습니다. 독재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없는 나라라고 보았고, 그래서 다들 이렇게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한 나라의 비결은 뭘까, 어떤 요인들이 있었을까를 주제로 논문을 쓰는 학자들도 많았는데, 이처럼 발전된 민주주의에서 갑자기 독재 수준으로 몇 단계를 건너뛰어 후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친위쿠데타가 보여준 겁니다.” 12·3이 국제사회에 준 교훈이다.
‘극우’의 4단계 진화, 그리고 헌정위기
지난해 말 윤석열 탄핵 찬성과 반대가 80% 대 18%로 찬성이 압도적이었던 여론은 한 달 만에 60% 대 35%까지 좁혀지며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비율이 거의 그대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진짜 비민주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극복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지난해 말의 기대는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계엄을 할 만도 했다’ ‘탄핵할 정도의 잘못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다니…”라는 충격과 탄식으로 변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이 같은 극우적 생각을 하는 이들은 계엄 때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민주화 이후 계속 진화해왔다. 신 교수는 극우세력의 진화를 4단계로 설명한다. 1단계는 초기 조직화 단계로, 1987년 민주화 이후 독재 시대의 질서 붕괴 위협을 느낀 단체들이 보수단체의 이름으로 극우 성향 단체들을 설립하는 시기다. 2단계는 본격적인 조직화와 이념적 과격화 단계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과 사회문화적 변화에 위기의식을 느낀 세력들이 보수단체들을 조직화하고 과격한 이념을 지닌 우파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뉴라이트가 이 무렵인 2004년 생겼고, 신 교수도 이때부터 극우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3단계는 극우의 대중화와 대규모 집단행동 단계다.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를 겪으며 극우집회 경험을 축적한 대중이 형성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극우적 사고와 담론이 내면화되는 단계다. 마지막 4단계는 극우의 권력화 단계다. 윤석열 정부에서 극우 파워엘리트가 정치권력과 국가기관을 장악, 12·3 이후 극우 사회세력이 보수정치의 주류가 되고 보수정당이 전면적으로 극우화되는 단계다.
극우의 진화에서 ‘빨갱이’라는 명칭의 확산은 중요한 함의가 있다. “빨갱이는 죽어도 돼”라는 구호는 2016년 박근혜 탄핵 때 처음 등장한 이후 매주 극우집회에서 나오고 있다.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 플래카드에서는 국회, 민주노총, 전교조, 언론 등이 빨갱이로 규정되고 있다. 빨갱이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는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빨갱이는 공동체를 위험하게 만드는 적이고, 그 때문에 멸종되어야 한다는 인식만이 공유된다. ‘너 빨갱이잖아’ 한마디로 낙인찍는 과정을 거치면서 반공, 반북, 반중, 반페미, 반동성애, 반노조, 반좌파, 반진보, 반운동권, 반민주당 등 다양한 증오 대상을 가진 극우세력들이 생기고, 연결돼왔다. 반복되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 구호는 도덕적인 민감성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제노사이드의 사회적 징후라고 볼 수 있다. 특정 인구집단의 구성원들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최소한 죽여도 된다는 말에 익숙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집권 2년차인 2023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이라며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용어를 공산주의의 징표로 만들었다. 당시는 이미 계엄이 준비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구라도 빨갱이로 낙인찍어 수거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12·3 이후 민주주의 어떻게 지켜낼까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장갑차 맨몸 저지, 응원봉 시위, 남태령 대첩, 키세스 시위 등 여러 가지 연대의 행동과 참여 등을 통해 시민들은 비상계엄을 한 끗 차이로, 극적으로 막아냈습니다. 굉장히 야만적이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지만, 한국은 거대한 국가폭력이 민중을 누를 때 시민들이 맨손으로 그 폭력적인 국가권력을 정치권력에서 끌어내리는 데 계속 성공한 유일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신 교수는 이어 “해외 학자들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뭘 해야 하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국민은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 평가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계엄의 성공과 실패는 불과 한 끗 차이였다. 이미 넘어선 과거인 줄 알았던 1987년 이전의 여러 요소들이 갑자기 다시 폭발해 올라오는 이 시점에 이런 힘들이 더 이상 커지지 않게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신 교수는 크게 4가지를 강조했다. 우선 민주주의를 방어·보호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국가기관 파워엘리트층의 민주화를 이뤄야 하고, 일상 속에서 반인권·반민주적인 사고와 담론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아니요라고 얘기하며 시민사회의 민주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신 교수는 이에 더해 글로벌 복합위기 국면에서 민주적 정치세력들이 위기 대응과 관리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의 초반 얘기했듯이 글로벌 복합위기 대응에 실패할 경우 극단적인 세력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높아지며 이를 계기로 기반 확장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금은 모든 면에서 예측 불가능한 게 너무 많은 초불확실성의 사회입니다. 가령 트럼프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또 누가 우리의 우방이고 적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각자도생에 가까운 상황입니다. 민주적인 정치세력들이 위기 대응 역량을 보여줄 때 반민주적이고 극단주의적인 정치세력들은 자연스럽게 소수화되고 고립되는 길로 가게 됩니다.”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해방 80주년’ 기획 시리즈 끝>
후원 : 서울시교육청
남녀공학 전환을 공식화한 동덕여자대학교의 학교법인 동덕학원 이사장 일가와 김명애 총장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커지고 있다. 학교 측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재정난’을 공학 전환의 주요 이유로 들었는데 정작 학교 수익의 상당 부분이 이사장 일가와 교직원들의 급여·수당·회의비 등으로 지출돼 학내 환경 개선에 충분히 쓰이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최근 동덕학원 이사장 조원영씨 등 일가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혐의 고발 사건을 ‘혐의없음’으로 불송치했다. 반면 김명애 총장에 대해서는 업무상 횡령 및 사립학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이사장 일가에 대한 수사는 무혐의로 종결됐지만 의혹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덕학원이 2016년 교비회계 18억7900만원을 들여 매입한 평창동 고급 주택이다. 이 주택은 조 이사장 가족이 1999년부터 실거주한 곳으로, 매입 당시 16억3000만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학교는 “교육시설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주장하며 경매로 해당 주택을 매입했고 취득세 감면도 받았다.
경찰 불송치 이유서를 보면 재단은 “근저당권 실행으로 경매가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택 거주를 유지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며 “노후한 동덕박물관과 함께 철거해 교육용 건물을 신축하려던 계획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주택에는 2019년까지도 이사장 가족이 거주했고, 언론의 사학비리 의혹 제기 이후에야 공사가 시작돼 2021년 ‘동덕문화원’으로 조성됐다.
학교는 초기에는 “거주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가 이후 “임차료를 받고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사적 동기가 일부 내포됐을 여지는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착공 시점까지만 가족이 거주했고 임차료도 지급된 점을 고려할 때 배임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조 이사장 일가가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인 서울 서초구 방배대우아파트를 2022년부터 무상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무상 임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조 이사장의 아들이자 당시 총무처장이던 조모씨는 2015년부터 6억여원 규모의 노무·법률자문료 등을 교비회계에서 지출한 혐의로 고발됐지만, 경찰은 “등록금 반환소송 대응, 교육용 재산 유지·관리, 학사업무 자문 등 학교 교육에 필요한 비용”이라며 불송치했다. 이에 대해 여성의당은 “학생 교육과 직접 무관한 비용을 교비로 지출한 것은 명백한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사장의 자녀들에게 지급된 각종 급여·수당도 문제로 지적했다. 경찰 수사 결과, 아들 조씨에게는 급여·행정연구비·겸직수당 등이, 학교 내 카페를 운영해온 딸 조모씨에게는 ‘식음료사업 직책수당’으로 2020년 2800만원, 2021~2024년 매년 4800만원이 지급됐다. ‘갤러리 직책수당’으로도 2020년 1020만원, 2021년 4080만원, 2022~2024년 매년 4200만원 이상이 지급됐다.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면서도 “적정 범위를 초과한 과도한 금액으로 볼 수 없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여성의당 법률대리인 이경하 변호사는 “일반 월급 수준의 돈을 실체도 불분명한 ‘카페 겸직 수당’으로 받았는데도 과도하지 않다고 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에 판단 근거를 물었지만 경찰 관계자는 “수사 사안이라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총장이 검찰에 송치된 사안은 승진 규정 적용과 관련한 법률비용, 직원 징계 자문료, 교육시설 점거 대응 법률비용 등을 교비회계에서 지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회계 업무를 승인·총괄한 총무처장 조씨는 불송치됐다. 불송치 이유서에는 총무처장이 어떤 이유로 혐의를 벗었는지 기재돼 있지 않다. 이 변호사는 “김 총장만 ‘바지사장’처럼 책임을 지고,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 이사장 일가는 모두 빠져나간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 총장의 검찰 송치 소식이 알려진 지난 4일 학교 측은 즉각 반박 공지를 내고 “교비 횡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학교는 “모두 학교 운영을 위한 비용”이라며 “사적인 용도로 쓰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사안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판단받기 위한 송치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올바른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현수막을 걸기 좋은 ‘목 좋은’ 장소들이 두세 군데 있다. 지난 몇년간 그곳에는 백신 음모론에서부터 부정선거 음모론, 계엄과 내란 옹호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헛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쉬지 않고 걸렸다.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처음에는 한심하다고 혀를 찼지만, 점차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을 믿는 사람들이 ‘실존’하고, 심지어 구체적 행동에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청부과학>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환경보건학자 데이비드 마이클스 책의 원래 제목은 <의심이 그들의 제품(Doubt is their product)>이다. 이는 “의심이 우리의 제품이다. 그것은 일반 대중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사실들’과 경쟁하는 최선의 수단이며, 또한 ‘논란’을 만들어내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담배회사 경영진의 발언을 비튼 것이다. 담배, 벤젠처럼 사람들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건강에 이롭다거나 무해하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다만 유해성을 주장하는 연구들에 이런저런 방법론적 결함들이 있고 악영향을 끼치는 다른 요인들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러니 근거가 확실해질 때까지, 논란이 종식될 때까지 좀 지켜보자는 의심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식이다. 학계 동향이나 연구의 기술적 세부 사항을 따져가며 옳고 그름을 일일이 판단하기 어려운 대중들 입장에서는 논란이 ‘있어 보이는’ 것 자체가 기존에 확립된 진실을 불신하게 만드는 좋은 근거가 된다.
이러한 전략은 정치사회 영역에서도 작동한다. 뜬금없는 비상계엄으로 무장한 군경을 동원해 국회를 침탈하려 했고, 체포 명령에 불복하며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려 했으며, 사법기관을 물리적으로 점거해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되었음에도, 마치 이러한 행동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존재하는 것처럼 ‘공정하게’ 찬성·반대 패널을 불러서 토론시키는 모습이야말로 사건 본질을 훼손하는 가장 효과적 전략이다. 권위주의 독재의 DNA를 타고난 민정당 후손들이나 신정일치를 꿈꾸는 기독교 분파들이 내뱉는 주장들의 가장 큰 해악은 허무맹랑한 발언의 내용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진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프레이밍하는 그들의 접근 방식에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세계관과 가장 거리가 먼 권위주의 성향의 집단이 이러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대단히 아이러니하지만,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전략은 아니다. 미국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는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돌베개·2019)에서 트럼프로 귀결된 ‘탈진실’ 현상의 계보를 분석한 바 있다.
신뢰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최소한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를 의미한다. 국가 제도와 동료 시민을 불신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법과 규칙을 지키고 대가 없이 타인들과 협력하며 공동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움직일 가능성은 작다. 초록불이 켜지면 움직이고 빨간불이 켜지면 멈춘다는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없는 도로에서 과연 어떤 대혼돈과 파국이 펼쳐질지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 규칙을 만들고 사람들이 이를 지키도록 해야 할 임무를 지닌 사법·입법 기구의 권력자들, 언론이 앞장서서 제도와 사회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생명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려 했던 이들에게 ‘법리적 다툼의 여지’ ‘정치적 박해’를 운운하며 다른 진실이 존재하는 양 ‘논란’을 확산시키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법의 잣대를 적용해서 규칙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학습시키고 있다. 그로 인한 이득은 소수에게 집중되지만 그 대가는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치르게 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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