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효자동 코오롱하늘채 [박경은 기자의 클래식 샛길]반주일까, 동반자일까…같은 소나타, 다른 간판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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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6-05-26 09:18본문
전주 효자동 코오롱하늘채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이달 30일까지 전국 주요 도시에서 함께 무대에 오른다. ‘듀오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 공연에서 두 연주자는 베토벤, 레스피기, 바인베르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려준다. 이들은 2021년에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프로젝트를 함께한 바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는 모두 10곡이다. 이 중 5번(봄)과 9번(크로이처)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이번 무대에서 들려주는 곡은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다.
2년 전 내한 리사이틀을 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포함해 5번과 9번을 국내 팬들에게 들려줬다. 당시 공연은 ‘제임스 에네스 바이올린 리사이틀’로 소개됐다. 같은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어떤 무대에서는 ‘듀오 리사이틀’이 되고 어떤 무대에서는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된다. 그 이유는 뭘까.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하면 바이올린이 독주를 하고 피아노가 반주를 맡는 음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만드는 실내악으로 보는 편이 적합하다. 물론 모든 작품에서 두 악기의 비중이 똑같이 나뉘는 것은 아니다. 곡에 따라 바이올린이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피아노가 화성과 구조를 주도하기도 한다.
베토벤 이후 주요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라기보다 대등하게 대화하고 충돌하고 주고받는 동반자에 가깝다. 베토벤하우스 디지털 아카이브(Beethoven-Haus Bonn)를 보면 흔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불리는 작품들의 목록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표기되어 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의 초판 악보에도 ‘피아노포르테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라고 적혀 있다. 오늘날의 통칭은 ‘바이올린 소나타’이지만 악보가 전제하는 무대는 한 명의 독주, 한 명의 반주가 아닌 두 연주자가 함께 만드는 무대인 셈이다.
그렇다고 공연명이 늘 악보의 구조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공연은 예술인 동시에 시장에서 관객들에게 팔리는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상품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우선으로 고려하고 내세워지는 것은 관객을 움직이는 ‘이름’이다. 스타급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의 간판이 된다면 공연명은 흔히 ‘바이올린 리사이틀’로 정리된다. 이는 피아노의 역할을 낮게 보는 것이 아니라 공연의 브랜드를 앞세우는 전략인 셈이다.
최근 몇 년간 베토벤과 브람스 소나타로 호흡을 맞춰온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해플리거의 사례는 이 문제를 더 흥미롭게 보여준다. 힐러리 한은 국내에서도 강력한 티켓 파워를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다. 해플리거는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국제 무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해 왔으며 임윤찬이 우승했던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두 사람은 2023년과 2024년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듀오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로 연주했다.
공연을 소개하는 방식에 따라 ‘듀오’라는 말은 강조되기도,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바이올린 소나타라는 통칭 속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이는 두 악기의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부르는 이름이 ‘듀오’이기도 하다. 앞으로 ‘바이올린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의 공연을 보러 갈 때 포스터나 타이틀 옆에 작게 적힌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들여다보는 것도 공연을 다채롭게 감상하는 재미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유사시 원유·석유제품 스와프 거래를 추진하기로 하자 산업계에선 ‘윈윈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원유 정제에, 일본은 원유 수급에 각각 강점이 있어 중동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대란에 공동 대응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20일 정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국토가 섬으로 분절돼 있고 지진 위험에 노출돼 있어 원유 정제시설이 전역에 흩어져 있다.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고 운송에도 한계가 있다.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일본은 원유를 정제해 만든 석유제품을 전국에 공급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며 “오히려 울산에서 석유제품을 수입해 사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비산유국이지만 세계 5대 석유제품 수출국 타이틀을 유지하는 이유다. 정유사와 석유화학사가 울산과 충남 서산, 전남 여수 등 국가산업단지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발발 이후인 지난 3~4월 석유제품 수출입 통계를 보면 일본이 한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3~4월 한국은 일본에 36만7680t의 휘발유를 수출했다. 수입은 14만7998t이었다.
경유는 수출 18만6622t, 수입 344t으로 집계됐고, 윤활유는 수출 7만2387t, 수입 4만7643t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은 일본에 8만7867t의 나프타를 수출한 반면 수입은 1만3040t에 그쳤다. 주요 석유제품에서 수입보다 수출이 많았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중동 사태 이전부터 석유제품만큼은 한국산에 의존해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에도 원유 수급에서 역량을 과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3월 이후 중동산 원유를 싣고 일본에 들어온 유조선 33척의 항로를 분석한 결과, 15척이 말레이시아와 인도 인근 해안에서 선박 간 환적 방식으로 물량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일본이 환적 방식으로 수급한 중동산 원유는 2470만배럴로, 중동 사태 이후 일본이 조달한 원유의 20% 이상이라고 전했다. 닛케이는 “아시아 해역에서 일본 선박이 외국 선박으로부터 원유를 넘겨받은 것은 위험한 중동 해역 항해를 피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해상에서 원유를 옮겨 싣기는 물리적으로도 어렵지만 외교력이 뒷받침 안 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 제재가 일시적으로 풀린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원유를 원활하게 수입할 수 있는 평시엔 일본과의 협력이 그렇게 크게 필요하진 않다”며 “하지만 중동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사시 한국은 일본에서 원유를 가져오고, 일본은 한국이 정제한 석유제품을 가져가는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네, 그런 곳이 정말 있습니다
페데리코 구스만 루비오 지음 | 조구호·남진희 옮김 | 알렙 | 340쪽 | 2만원
상상해볼 수는 있다. 세상이 모조리 썩어 어떻게 해도 나아질 가망이 없다고 느낄 때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는 있다. 대부분 꿈만 꾼다. 몇몇은 종이에 무언가 끄적댄다. 토머스 모어에게 ‘유토피아’를 이야기해준 여행가의 이름은 히슬로데이(Hythloday). 그리스어 ‘hythlos’(헛소리)와 ‘daios’(전문가)를 합친 이름이다. 토머스 모어조차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는 걸 전제했다.
가끔 ‘헛소리’를 진지하게 세상에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다. 땅이 넓은 데다 미개척지가 많은 라틴아메리카는 이들이 공상을 구현하기 좋은 땅이었던 것 같다. 멕시코의 작가 페데리코 구스만 루비오의 <네, 그런 곳이 정말 있습니다>는 라틴아메리카의 유토피아 흔적을 찾은 책이다.
유토피아의 모습은 꿈꾸는 이마다 달랐다. 헨리 포드가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포드란지아부터 가보자. 브라질 아마존강에 있는 포드란지아는 포드가 타이어용 고무를 수급하기 위해 만든 도시다. 포드는 브라질 정부로부터 경기도 전체 면적에 해당하는 1만㎢의 땅을 양도받은 뒤, 이곳에 건물·철도·비행장·은행·학교를 짓고 브라질 정부 간섭을 받지 않는 보안군까지 설립했다. 포드는 포드란지아를 고무 수급 농장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포드는 자신이 근면한 노동자이자 활발한 소비자인 자본주의적 인간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고 믿었고, 이를 위해 미국적 삶의 양식을 밀림 한복판으로 끌어왔다. 포드란지아에서는 음주·도박·성매매·축구가 금지됐고, 미국의 노동자들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해야 했다. 미국 관리자들은 낮에 일하기엔 아마존이 너무 덥고 습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마 임금을 주면 노동자들의 불만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아마존의 노동자들이 ‘상징적 가치 높은 종이 뭉치’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마체테나 냄비 살 돈 정도만 모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일을 그만뒀다. 대부분의 아마존 주민들은 집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했다. 1926년 첫 삽을 뜬 포드란지아는 포드의 구상대로 운영되지 못했고, 1945년 합성고무의 등장과 함께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포드는 브라질 정부에 손해를 보며 땅을 되판 뒤 아마존을 영영 떠났다.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로시는 실증주의와 아나키즘을 결합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그는 아나키스트 코뮌을 현실에 구현하려 했다. 유럽은 타락한 땅이라고 본 로시와 동지들은 새롭고 텅 빈 땅에서 시작했다. 1890년 아나키스트들은 브라질 파라주의 한 마을에 사유 재산·법·권위가 타파되고, 모두가 공동 노동하고 자유연애하는 공동체 ‘콜로니아 세실리아’를 만들었다.
문제는 의외로 자유연애에서부터 불거졌다. 로시는 “동시에 한 사람 이상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이며, 핵가족은 “부르주아 사회의 정점이자 가장 공고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공동체에 합류하기 전 독신이었던 로시는 남편이 있는 여성의 사랑을 얻어냈고, 한 여성과 두 남성의 로맨스는 얼마간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로시를 제외하면 자유연애를 실천하는 아나키스트는 거의 없었다. 공동체는 가혹한 중노동과 찢어지는 가난을 견디다 못해 해산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886년 파라과이에 세워진 독일인 정착촌 누에바 게르마니아는 이 책에 언급된 유토피아 사례 중 가장 사악하다. 아리아 민족의 우월성을 굳게 믿었던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아내 엘리자베트 니체는 이곳을 현지 주민과 섞여 사는 것이 금지된 순혈 공동체로 구성했다. 루터교가 공식 종교, 채식이 기본 원칙이었다. 금욕적인 생활방식을 강조했지만 푀르스터 부부는 아리아인 하인을 뒀다. 빈약한 농업 기술, 모기로 인한 질병에 정착민들은 곧 난감해졌고, 푀르스터는 20세기를 목전에 둔 1899년 인근 호텔에서 자살했다. 아내 엘리자베트는 유럽으로 돌아와 병들어 죽어가는 오빠 프리드리히 니체를 반유대주의자로 꾸며내는 데 몰두했다. 누에바 게르마니아는 모든 유토피아가 지닌 배타적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세상은 우리를 대접할 수준이 안 된다. 세상을 낫게 만들겠다는 헛된 노력을 하지 말고, 우리 틀에 맞는 작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모든 유토피아가 비웃음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어떤 유토피아는 현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 16세기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일대에 있던 예수회 선교구는 원주민 과라니족과 선교사들이 함께 만든 곳이었다. 이곳이 ‘온건한 형태의 식민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원주민을 마음대로 약탈하려는 식민주의자들의 횡포를 막는 데는 분명히 기여했다. 시인이자 해방신학 사제였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이 1960년대 니카라과에 세운 혁명 공동체는 주민이 함께 노동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삶을 추구했다. 독재 정권의 탄압에 공동체는 해체됐으나, 이곳 출신 청년들은 산디니스타(니카라과 좌파 혁명 세력)로 합류해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
저자는 “유토피아는 극단적 염세주의를 가장 생기 넘치는 낙관주의와 연결한다”고 평가한다. 다만 천국을 꿈꾸며 출발한 유토피아는 쉽사리 강제수용소 비슷한 곳으로 귀결되곤 한다. 허술한 방법론, 배타주의, 독선은 고귀한 선의에 먹칠한다. ‘다른 어딘가’가 아닌 ‘지금 여기’를 생각하며, 천국과 강제수용소의 틈을 좁히는 섬세함을 추가한다면, 몰락한 유토피아는 훌륭한 반면교사의 현장이 될 것이다.
기행문과 문화비평, 자전적 경험담, 인류학적 기록이 엮인 책이다. 다만 그 연결부가 매끄럽지는 않아 서술이 난삽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개별 사례의 매력과 기획력에 비해 구성적 완성도가 약하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는 모두 10곡이다. 이 중 5번(봄)과 9번(크로이처)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이번 무대에서 들려주는 곡은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다.
2년 전 내한 리사이틀을 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포함해 5번과 9번을 국내 팬들에게 들려줬다. 당시 공연은 ‘제임스 에네스 바이올린 리사이틀’로 소개됐다. 같은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어떤 무대에서는 ‘듀오 리사이틀’이 되고 어떤 무대에서는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된다. 그 이유는 뭘까.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하면 바이올린이 독주를 하고 피아노가 반주를 맡는 음악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함께 만드는 실내악으로 보는 편이 적합하다. 물론 모든 작품에서 두 악기의 비중이 똑같이 나뉘는 것은 아니다. 곡에 따라 바이올린이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피아노가 화성과 구조를 주도하기도 한다.
베토벤 이후 주요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라기보다 대등하게 대화하고 충돌하고 주고받는 동반자에 가깝다. 베토벤하우스 디지털 아카이브(Beethoven-Haus Bonn)를 보면 흔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라고 불리는 작품들의 목록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로 표기되어 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들의 초판 악보에도 ‘피아노포르테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라고 적혀 있다. 오늘날의 통칭은 ‘바이올린 소나타’이지만 악보가 전제하는 무대는 한 명의 독주, 한 명의 반주가 아닌 두 연주자가 함께 만드는 무대인 셈이다.
그렇다고 공연명이 늘 악보의 구조를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공연은 예술인 동시에 시장에서 관객들에게 팔리는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상품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우선으로 고려하고 내세워지는 것은 관객을 움직이는 ‘이름’이다. 스타급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의 간판이 된다면 공연명은 흔히 ‘바이올린 리사이틀’로 정리된다. 이는 피아노의 역할을 낮게 보는 것이 아니라 공연의 브랜드를 앞세우는 전략인 셈이다.
최근 몇 년간 베토벤과 브람스 소나타로 호흡을 맞춰온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해플리거의 사례는 이 문제를 더 흥미롭게 보여준다. 힐러리 한은 국내에서도 강력한 티켓 파워를 가진 바이올리니스트다. 해플리거는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국제 무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해 왔으며 임윤찬이 우승했던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두 사람은 2023년과 2024년 예술의 전당 무대에서 ‘듀오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로 연주했다.
공연을 소개하는 방식에 따라 ‘듀오’라는 말은 강조되기도,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바이올린 소나타라는 통칭 속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져 보이는 두 악기의 관계를 좀 더 정확하게 부르는 이름이 ‘듀오’이기도 하다. 앞으로 ‘바이올린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의 공연을 보러 갈 때 포스터나 타이틀 옆에 작게 적힌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들여다보는 것도 공연을 다채롭게 감상하는 재미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유사시 원유·석유제품 스와프 거래를 추진하기로 하자 산업계에선 ‘윈윈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은 원유 정제에, 일본은 원유 수급에 각각 강점이 있어 중동 사태로 촉발된 에너지 대란에 공동 대응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20일 정부와 정유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국토가 섬으로 분절돼 있고 지진 위험에 노출돼 있어 원유 정제시설이 전역에 흩어져 있다. 대량 생산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고 운송에도 한계가 있다.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일본은 원유를 정제해 만든 석유제품을 전국에 공급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니고 있다”며 “오히려 울산에서 석유제품을 수입해 사용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비산유국이지만 세계 5대 석유제품 수출국 타이틀을 유지하는 이유다. 정유사와 석유화학사가 울산과 충남 서산, 전남 여수 등 국가산업단지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발발 이후인 지난 3~4월 석유제품 수출입 통계를 보면 일본이 한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3~4월 한국은 일본에 36만7680t의 휘발유를 수출했다. 수입은 14만7998t이었다.
경유는 수출 18만6622t, 수입 344t으로 집계됐고, 윤활유는 수출 7만2387t, 수입 4만7643t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은 일본에 8만7867t의 나프타를 수출한 반면 수입은 1만3040t에 그쳤다. 주요 석유제품에서 수입보다 수출이 많았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중동 사태 이전부터 석유제품만큼은 한국산에 의존해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에도 원유 수급에서 역량을 과시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3월 이후 중동산 원유를 싣고 일본에 들어온 유조선 33척의 항로를 분석한 결과, 15척이 말레이시아와 인도 인근 해안에서 선박 간 환적 방식으로 물량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일본이 환적 방식으로 수급한 중동산 원유는 2470만배럴로, 중동 사태 이후 일본이 조달한 원유의 20% 이상이라고 전했다. 닛케이는 “아시아 해역에서 일본 선박이 외국 선박으로부터 원유를 넘겨받은 것은 위험한 중동 해역 항해를 피하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해상에서 원유를 옮겨 싣기는 물리적으로도 어렵지만 외교력이 뒷받침 안 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미국 제재가 일시적으로 풀린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원유를 원활하게 수입할 수 있는 평시엔 일본과의 협력이 그렇게 크게 필요하진 않다”며 “하지만 중동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유사시 한국은 일본에서 원유를 가져오고, 일본은 한국이 정제한 석유제품을 가져가는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네, 그런 곳이 정말 있습니다
페데리코 구스만 루비오 지음 | 조구호·남진희 옮김 | 알렙 | 340쪽 | 2만원
상상해볼 수는 있다. 세상이 모조리 썩어 어떻게 해도 나아질 가망이 없다고 느낄 때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꿈꿀 수는 있다. 대부분 꿈만 꾼다. 몇몇은 종이에 무언가 끄적댄다. 토머스 모어에게 ‘유토피아’를 이야기해준 여행가의 이름은 히슬로데이(Hythloday). 그리스어 ‘hythlos’(헛소리)와 ‘daios’(전문가)를 합친 이름이다. 토머스 모어조차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는 걸 전제했다.
가끔 ‘헛소리’를 진지하게 세상에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다. 땅이 넓은 데다 미개척지가 많은 라틴아메리카는 이들이 공상을 구현하기 좋은 땅이었던 것 같다. 멕시코의 작가 페데리코 구스만 루비오의 <네, 그런 곳이 정말 있습니다>는 라틴아메리카의 유토피아 흔적을 찾은 책이다.
유토피아의 모습은 꿈꾸는 이마다 달랐다. 헨리 포드가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포드란지아부터 가보자. 브라질 아마존강에 있는 포드란지아는 포드가 타이어용 고무를 수급하기 위해 만든 도시다. 포드는 브라질 정부로부터 경기도 전체 면적에 해당하는 1만㎢의 땅을 양도받은 뒤, 이곳에 건물·철도·비행장·은행·학교를 짓고 브라질 정부 간섭을 받지 않는 보안군까지 설립했다. 포드는 포드란지아를 고무 수급 농장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포드는 자신이 근면한 노동자이자 활발한 소비자인 자본주의적 인간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고 믿었고, 이를 위해 미국적 삶의 양식을 밀림 한복판으로 끌어왔다. 포드란지아에서는 음주·도박·성매매·축구가 금지됐고, 미국의 노동자들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해야 했다. 미국 관리자들은 낮에 일하기엔 아마존이 너무 덥고 습하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마 임금을 주면 노동자들의 불만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아마존의 노동자들이 ‘상징적 가치 높은 종이 뭉치’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은 마체테나 냄비 살 돈 정도만 모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일을 그만뒀다. 대부분의 아마존 주민들은 집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했다. 1926년 첫 삽을 뜬 포드란지아는 포드의 구상대로 운영되지 못했고, 1945년 합성고무의 등장과 함께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포드는 브라질 정부에 손해를 보며 땅을 되판 뒤 아마존을 영영 떠났다.
이탈리아 작가 조반니 로시는 실증주의와 아나키즘을 결합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였다. 그는 아나키스트 코뮌을 현실에 구현하려 했다. 유럽은 타락한 땅이라고 본 로시와 동지들은 새롭고 텅 빈 땅에서 시작했다. 1890년 아나키스트들은 브라질 파라주의 한 마을에 사유 재산·법·권위가 타파되고, 모두가 공동 노동하고 자유연애하는 공동체 ‘콜로니아 세실리아’를 만들었다.
문제는 의외로 자유연애에서부터 불거졌다. 로시는 “동시에 한 사람 이상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이며, 핵가족은 “부르주아 사회의 정점이자 가장 공고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공동체에 합류하기 전 독신이었던 로시는 남편이 있는 여성의 사랑을 얻어냈고, 한 여성과 두 남성의 로맨스는 얼마간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로시를 제외하면 자유연애를 실천하는 아나키스트는 거의 없었다. 공동체는 가혹한 중노동과 찢어지는 가난을 견디다 못해 해산했다.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886년 파라과이에 세워진 독일인 정착촌 누에바 게르마니아는 이 책에 언급된 유토피아 사례 중 가장 사악하다. 아리아 민족의 우월성을 굳게 믿었던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아내 엘리자베트 니체는 이곳을 현지 주민과 섞여 사는 것이 금지된 순혈 공동체로 구성했다. 루터교가 공식 종교, 채식이 기본 원칙이었다. 금욕적인 생활방식을 강조했지만 푀르스터 부부는 아리아인 하인을 뒀다. 빈약한 농업 기술, 모기로 인한 질병에 정착민들은 곧 난감해졌고, 푀르스터는 20세기를 목전에 둔 1899년 인근 호텔에서 자살했다. 아내 엘리자베트는 유럽으로 돌아와 병들어 죽어가는 오빠 프리드리히 니체를 반유대주의자로 꾸며내는 데 몰두했다. 누에바 게르마니아는 모든 유토피아가 지닌 배타적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세상은 우리를 대접할 수준이 안 된다. 세상을 낫게 만들겠다는 헛된 노력을 하지 말고, 우리 틀에 맞는 작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모든 유토피아가 비웃음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어떤 유토피아는 현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 16세기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일대에 있던 예수회 선교구는 원주민 과라니족과 선교사들이 함께 만든 곳이었다. 이곳이 ‘온건한 형태의 식민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원주민을 마음대로 약탈하려는 식민주의자들의 횡포를 막는 데는 분명히 기여했다. 시인이자 해방신학 사제였던 에르네스토 카르데날이 1960년대 니카라과에 세운 혁명 공동체는 주민이 함께 노동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삶을 추구했다. 독재 정권의 탄압에 공동체는 해체됐으나, 이곳 출신 청년들은 산디니스타(니카라과 좌파 혁명 세력)로 합류해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
저자는 “유토피아는 극단적 염세주의를 가장 생기 넘치는 낙관주의와 연결한다”고 평가한다. 다만 천국을 꿈꾸며 출발한 유토피아는 쉽사리 강제수용소 비슷한 곳으로 귀결되곤 한다. 허술한 방법론, 배타주의, 독선은 고귀한 선의에 먹칠한다. ‘다른 어딘가’가 아닌 ‘지금 여기’를 생각하며, 천국과 강제수용소의 틈을 좁히는 섬세함을 추가한다면, 몰락한 유토피아는 훌륭한 반면교사의 현장이 될 것이다.
기행문과 문화비평, 자전적 경험담, 인류학적 기록이 엮인 책이다. 다만 그 연결부가 매끄럽지는 않아 서술이 난삽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개별 사례의 매력과 기획력에 비해 구성적 완성도가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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