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플리카사이트 미성년 여성 착취로 세운 ‘엡스타인 제국’···‘괴물들’이 믿은 ‘돈과 권력’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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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6-02-17 04:39본문
그는 돈을 굴리는 금융인이라기보다 ‘관계’를 굴려 정보와 돈을 얻고, 그 돈으로 권력을 매수한 사람이었다. 전 세계로 뻗은 거미줄 같은 그의 관계망 속에서 여성은 ‘엡스타인 제국’에 편입된 자에게 주어지는 전리품 같은 것이었다. 퍼즐을 맞추듯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는 엡스타인 사건은 글로벌 권력의 작동방식과 엘리트의 도덕적 파산을 보여주는 렌즈 역할을 하고 있다.
성착취의 비밀을 공유하는 것은 엡스타인이 글로벌 엘리트와 끈끈한 유대를 쌓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엡스타인은 정계·재계·학계·문화계 가릴 것 없이 돈과 권력, 명성을 가진 자는 누구나 자신의 섬으로 초대했다. 그 섬에서 미성년 여성들은 그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로 취급됐다.
처음에는 알음알음 알게 된 주변의 미성년 여성들을 ‘마사지’만 하면 된다고 속여 유인했지만, 당국이 피해 여성의 신고를 묵살하고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자 그의 행각은 더욱 대담해졌다. 엡스타인은 전 세계에서 소녀들을 모집하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운영했다. 다니엘 시아드, 장뤼크 브뤼넬 등 여러 모델 스카우트들이 그의 손발이 됐다. 프랑스·스페인 등 유럽 전역을 돌며 여성을 물색한 시아드는 2014년 엡스타인에게 보낸 e메일에서 “물고기(여성)를 잡으러 다니는 어부가 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엡스타인에게 자신이 찾아낸 소녀들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보냈는데, 그중 한 e메일에는 “최소 5명의 잠재적 대상을 찾아냈다. 16~17세 소녀들이고 15세도 포함돼 있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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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트들은 이렇게 모집한 여성들을 엡스타인에게 넘겼고 엡스타인은 이들을 다시 부유한 엘리트들에게 넘겼다. 피해 여성은 최소 1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신이 성착취를 했다고 인정한 사람은 없다. 이들의 성범죄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는 엡스타인 파일 속에 담긴 수많은 e메일과 사진들뿐이다.
엡스타인 성착취의 핵심 증인인 버지니아 주프레에게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했던 앤드루 전 영국 왕자는 최근 미국 법무부가 문건을 추가 공개하면서 여성 위에 엎드린 모습의 사진이 새로 알려졌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여성과 함께 욕조에 앉아있는 등 여러 여성과 친밀한 모습의 사진이 다수 드러났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러시아 여성들과의 성관계로 인해 성병에 걸렸다는 내용의 e메일이 공개됐다.
엡스타인은 누군가에게 접근할 때 언제나 자신의 섬에 한번 놀러 오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그의 섬에 가면 이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배타적인 엘리트 세계 안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2012년 엡스타인에게 “당신의 섬에서 열리는 광란의 파티는 또 언제 있느냐”는 문의 e메일을 보냈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CEO는 2013년 보낸 e메일에서 엡스타인을 초대하며 “당신의 하렘도 데려오라”고 말했다.
엡스타인이 방대한 성착취 네트워크를 통해서만 권력층에 접근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치스러운 선물과 막대한 기부금으로 환심을 사고, 고급 기밀 정보를 유통하며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미디어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는 페기 시걸을 통해 정치인, 귀족, 유명인이 참석하는 파티와 행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공유받은 그는 누가 누구를 만나고 싶어하는지, 누가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지, 어떤 기관이 돈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해 원하는 것을 선물했다.
엡스타인은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에게 고급 캐시미어 스웨터를, 영화감독 우디 앨런에게는 1만유로(약 1700만원)에 달하는 속옷과 셔츠를 선물했다. 하버드대에는 수백만달러, MIT에는 수십만달러의 기부금을 쾌척했다. 민주당·공화당 가릴 것 없이 정치자금을 기부했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에게도 수천달러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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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와 권력층은 향락과 돈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엡스타인에게 더 큰 돈과 기밀 정보로 보답했다. 이는 엡스타인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전 총리의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바라크는 앤드루 전 왕자와 함께 주프레가 성착취 가해자로 지목했던 사람 중 하나다.
주프레는 2014~2015년 작성한 진술서에서 ‘유명한 총리’와 성관계를 갖도록 엡스타인에게 강요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는 사후 출간된 회고록에서도 ‘유명한 총리’에게 정신을 잃을 만큼 구타당하면서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는 총리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지만, 그는 2020년 한 소송 문건에서 바라크 전 총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바라크는 주프레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엡스타인은 바라크에게 뉴욕의 아파트를 제공하고 유대인 단체에 후원했다. 바라크는 그 대가로 엡스타인에게 여러 투자처를 소개했다. 포브스가 법무부 문서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엡스타인이 2015년 스타트업 ‘리포티’에 100만달러(약 14억4000만원)를 투자한 것은 바라크 전 총리의 소개 덕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정예 첩보요원 출신들이 개발한 실시간 영상·데이터전송 기술 업체인 이 회사는 10년 만에 자산 가치가 138배 급성장했다. 엡스타인 역시 바라크에게 피터 틸이 공동 설립한 팔란티어의 이사회 합류를 조언했다. 엡스타인은 틸과 2000통 넘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수년 동안 깊은 교류를 나눈 사이였다.
이런 식으로 뻗어 나간 실리콘밸리 기업가들과의 인맥은 엡스타인에게 또 다른 보호막이 됐다. 엡스타인이 2008년 성착취 혐의로 수감되자 투자은행 JP모건은 엡스타인에게 제공해 온 거액의 현금 인출 특혜를 중단하려 했다. 이때 JP모건의 고위 임원인 제스 스탈리가 이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고 뉴요커가 전했다. 엡스타인이 그에게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게이츠 등 여러 억만장자를 고객으로 소개해줬기 때문이다.
피터 맨덜슨 전 주미 영국대사도 내각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9년 엡스타인에게 영국 정부가 추진 중이던 민감한 금융정책 정보를 비밀리에 넘겨줬다. 엡스타인을 “나의 절친”이라 불렀던 맨덜슨은 엡스타인의 섬에 놀러 간 것은 물론 그에게서 7만5000달러(약 1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은 의혹을 사고 있다.
심지어 엘리트를 혐오하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대표주자인 스티브 배넌조차도 자신의 이념을 다른 나라로 확산하기 위해 엡스타인의 글로벌 인맥을 이용하려 했다고 CNN이 엡스타인 문건을 바탕으로 전했다. 배넌은 엡스타인에게 유럽 정치인 소개를 부탁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에 대해 그와 토론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역시 엡스타인에게 혐오감을 느껴 연락을 끊었다던 설명과 달리 비상장 기업에 공동 투자하는 등 2018년까지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엡스타인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엡스타인과 공범 길레인 맥스웰이 유일하다. 수사당국은 미성년자를 유인해 엡스타인에게 제공한 시아드조차 증거불충분이란 이유로 기소하지 않았다.
그러나 엡스타인 사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못지않게 중요한 질문은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이다. 엡스타인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젊고 가난하며 기회가 절박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엡스타인 네트워크에 연루돼 이득을 본 엘리트가 너무 많다 보니, 이 사건은 엡스타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엘리트 이익집단 전체의 문제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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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타인 파일 공개를 끝까지 막으려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최소한 엡스타인의 성착취 범행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최근 공개된 법무부 문건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2006년 엡스타인 수사에 나선 플로리다주 팜비치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엡스타인이 그런 짓(미성년 성착취)을 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당신이 그를 막아줬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엡스타인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법무부가 이제까지 공개한 350만건의 엡스타인 파일은 전체 600만건의 60%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까지 공개한 파일들 역시 법무부가 많은 정보를 임의로 삭제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엡스타인 문건 공개를 주도해 온 토머스 매시(공화·켄터키), 로 카나(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법무부가 지운 권력자들의 이름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엘리트와 그들이 이끌어온 세계의 도덕적 위선을 이해하는 데는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엡스타인이란 ‘괴물’은 돈이면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권력이 제한 없는 특권과 면책을 약속하며, 양심의 가책은 가난하고 취약한 자들만의 몫인 우리 시대의 산물이다.
▼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han.kr
정부가 2027학년도 490명을 시작으로,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2년 만에 다시 추진한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모두 정부가 내놓은 숫자에 불만을 표했지만, 그간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멈춰 있던 의대 증원을 절차에 따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늘어나는 의사는 모두 의료취약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활동할 지역의사로 양성하겠다는 증원의 명분과 목표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적 추계와 합리적 정책 결정 과정 없이 증원이 추진됐다는 의료계 비판을 수용해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를 새로 구성했다. 추계위원은 의료계 공급자 단체 추천 위원이 과반을 차지하도록 했다. 추계위는 지난해 8월부터 약 5개월간 논의를 진행했다.
정부는 10일 이번 증원이 공식 추계와 심의 절차를 거치며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7차례에 걸쳐 심의기준을 먼저 정하고 그 기준을 하나하나 적용하면서 합의할 수 있었다”며 “과학적 근거와 민주적인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결정됐다는 그런 의미가 가장 클 것”이라고 말했다. 전 정부에서 2000명 증원으로 극심한 의·정 갈등이 발생했던 만큼 또다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벌어져선 안 된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보정심 회의에서는 2037년까지 추가로 필요한 의사 인력을 공공의대 배출 예상 인원(600명)을 제외하고 4124명으로 산출했다. 정부는 이 인원의 75% 수준인 3542명을 향후 5년에 걸쳐 증원하기로 했다. 정 장관은 “추계를 존중하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의과대학의 교육 여건을 고려하고 양질의 의사 인력을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정부는 2029년에 한 차례 재추계를 실시해 필요시 보완할 계획이다.
의대 입학정원은 1950년대 1040명에서 출발해 1998년 3507명까지 꾸준히 늘다가, 의약분업 여파로 2006년 3058명까지 줄어든 뒤 2024년까지 18년간 동결됐다. 윤석열 정부는 2025학년도 2000명 증원을 단행했지만 의료계 의견 수렴 부족과 전공의 집단이탈로 인해 2026학년도에 다시 정원을 동결했다.
증원된 인원을 전부 지역·필수·공공의료에 초점을 둔 지역의사제에 따라 뽑기로 한 점도 이번 결정의 특징이다. 이들이 지역에 정착할 경우, 2037년에는 의료취약지를 중심으로 약 3500명의 의사가 지역에서 활동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 결정을 두고 의료계와 시민단체 일부의 반발도 이어졌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당초 추계위에서 과학적으로 도출한 2037년도 의사 부족 총량 추계치가 보정심 논의 과정에서 의대 교육 여건이라는 명분에 밀렸다”고 했다.
보정심 표결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민주노총은 “추계 결과보다 부족한 수준의 증원은 당초 보정심 논의의 출발점이었던 ‘수급추계위의 결과를 존중한다’는 원칙과 명백히 배치된다”고 했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보정심 회의에서 표결에 반대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김 회장은 “합리적 이성이 결여된 채, 숫자에만 매몰된 정부 결정에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하지만 의협이 당장 총파업을 포함한 단체행동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불법계엄 포고문은 지금 봐도 황당합니다. 그런데 만약 계엄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어떤 일상을 살았을까요? 해외를 볼 것도 없이 군부독재 시절을 보면 됩니다. 지금은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거나 가지고만 있어도 어딘가로 끌려가던 시절이었죠.
71살의 이동섭씨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1983년, <자본론>을 읽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모진 구타와 고문을 겪었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유예에 처해졌습니다. 43년 동안 억울하게 죄의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그가 최근 무혐의를 받았습니다. 경향신문 박채연 기자가 지난 9일 이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씨와 같은 억울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0대 시절의 이동섭씨와 정진태씨, 고 박광순씨(2017년 사망)는 공부 친구였습니다. 함께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며 세상을 공부했습니다. 사건은 1983년 설 명절 이후인 2월16일에 일어났습니다. 금서였던 <자본론>을 읽었다는 이유로 경찰이 들이닥친 겁니다. 세 사람은 영장 없이 체포됐습니다.
이동섭씨는 22일 동안 갇혀 조사를 받았습니다. 말이 조사지, 매 맞고 발로 걷어차이는 시간이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감옥에 갇혀 본 경험이 있는 그에게도 조사는 옥살이보다 더 고된 일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선 생활하는 거지만 조사는 ‘작품을 만들어야’ 해서 오만 일들이 다 벌어진다”며 “돌이켜보면 경찰이 조직 사건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막상 그런 게 없으니 책을 문제 삼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들을 수사한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현 서울남부지검)은 “공산주의 서적을 탐독해 북한의 대남 노선을 간접적으로 이롭게 했다”며 이동섭씨와 박광순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습니다. 기소유예란 혐의는 인정되지만 재판에는 넘기지 않는 것으로, 선고만 없었지 유죄나 다름없는 조치입니다. 정진태씨는 이들에게 책을 보여준 ‘주범’이라는 이유로 징역 3년을 받았고요.
그 이후 억울한 죄를 달고 산 40여년. 희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을 신청한 정진태씨가 지난해 10월28일 42년 만의 무죄를 선고받은 겁니다. 법원은 정씨가 영장 없이 불법으로 구금돼 수사를 받았으며, <자본론>을 읽은 것도 죄가 아니라고 인정했습니다. 정씨는 기자회견에서 “40년 동안 짓눌러 왔던 범죄자라는 굴레를 벗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보다 앞서 같은 해 4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정씨의 억울함을 인정했고요.
정진태씨와 주변인들의 독려에 이동섭씨도 명예 회복에 나섰습니다. 정식으로 재판을 받은 게 아니어서 재심 대신 진정을 제기했고, 지난달 23일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씨는 “나는 매만 맞고 나와서 진정을 넣을지도 고민했는데, 무혐의가 나오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습니다.
이동섭씨처럼 엄혹한 시대 억울한 피해를 본 이들의 재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22일에는 과거 전두환 정권 안기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됐던 문영석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같은 달 19일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 강을성씨의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죠. 지난해 6월에는 1966년 이복형에게 속아 북한에 갔다가 돌아온 뒤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고 오경무씨도 재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벗는 건 여전히 너무 고된 일입니다. 검찰이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는 일에 소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8월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했다가 49년 만에 무죄가 확정된 고 김태열씨 사건에서, 검찰은 형사보상 의견을 묻는 법원에 “‘적의처리’가 상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적의처리란 판단이나 의견을 내지 않고 재량에 맡기겠다는 뜻입니다. 검찰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었고, 대검찰청은 최근 전국 검찰청에 “적의처리 답변을 지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국가의 무관심 속에 피해자가 직접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동섭씨를 대리한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검찰이 이 사건을 진정 전부터 검토해왔다고 하더라도 결국 피해자들이 진정을 낼 때까지 방치한 셈”이라며 “5·18처럼 국가보안법 관련해서도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해자와 기소유예된 피해자들에 대해 일괄적으로 혐의없음 처분을 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순간.’ 한강 작가가 문학으로 남긴 기록입니다. 김광호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이를 언급하며 “재심 무죄가 역사 바로잡기를 넘어 우리 사회 제도 변화와 민주주의 공고화로 나아갈 때 이 희망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넘어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국가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 경향신문 뉴스레터 <점선면>의 슬로건입니다. 독자들이 생각해볼 만한 이슈를 점(사실), 선(맥락), 면(관점)으로 분석해 입체적으로 보여드립니다. 매일(월~금) 오전 7시 하루 10분 <점선면>을 읽으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워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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